“민족주의 ‘묻지마식’ 통일은 국가 정통성 훼손”

“통일을 위해서는 민족이란 개념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민족주의는 ‘묻지마’식 통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통일은 정치적 정체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지난 2일 대학생 시사 교양지 ‘바이트’가 주최한 ‘민족주의 사관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언론학을 배우고 있는 대학생들이 나눈 대담 내용의 일부다. 


이날 대담은 대학생들이 질문하고 이 교수가 이를 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영훈 교수는 단군을 부정하고 ‘식민지근대화론’을 제기하는 등 기존 한국사 학계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해왔다.


이영훈 교수는 ‘단군’을 민족주의 사관이 만들어 낸 ‘상상 공동체’의 모체라고 규정하고, 그에 맞서는 실증주의 역사학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19세기에 단군은 없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우리의 조상은 기자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군을 대표로 하는 민족주의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이제는 민족주의 사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식민지 시기, 대한민국 태동시기, 산업화 시기에 민족주의가 발휘했던 긍정적 효과를 인정하면서 “민족주의는 ‘상상’으로 구성된 것이고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 오히려 부정적인 역할이 드러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 교수는 통일을 민족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특히 “민족주의는 80~90년대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인들을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민족의 분단에 인해 성립한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는 역사인식이 강화되면서 통일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라며 “자유민주적 통일을 추구해왔던 우리는 그것을 초월하는 우리민족끼리 통일론이 나왔을 때부터 좌·우, 진보·보수로 본격적으로 갈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민족주의는 소위 ‘묻지마’ 식 통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반민족적 세력이 비도덕적으로 세운 잘못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은 민족이라는 차원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갖는 국민으로서 접근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훈 교수와 대학생들이 민족주의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바이트>


[다음은 이영훈 교수와 대학생들 간 대담 요지]


대학생 질문(이하 대) : 교수님은 단군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 단군 신화는 우리의 역사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이영훈 교수(이하 교수) : 결론적으로 그렇다. 신화와 역사는 명백히 구분돼야 한다. 대략 10년 전부터 고조선은 한국의 역사로 정식으로 편입됐다. 일반 역사서에서도 그렇고, 교과서에서도 그렇다. 나는 실증주의를 중시하는 연구자로서 인정하기 힘들다.


대 : 단군이 우리민족의 시조가 아니면 누가 우리민족의 시조란 말인가?


교수 : 19세기 역사에는 단군이 없다. 조선인들은 민족의 시조를 기자로 봤다. 중국에서 건너온 성인 기자의 정통이 기자조선에서 삼한으로 이어지고 신라로 이어지고 다음에는 고려, 그리고 조선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조선시대 역사학이다.


단군을 국가적으로 추승하는 공식적인 기억·기록·제도는 없었다. 단군은 13세기 삼국유사에서 최초로 발견되기는 했지만, 국가적 기념이나 현창의 대상은 아니었다. 20세기 민족 소멸위기가 찾아오자 자연스럽게 기자는 물러갔다. 하지만 식민지 초기 만 해도 박은식 씨를 비롯해 농촌의 성리학자들은 여전히 기자를 시조로 생각하는 풍조는 강하게 남아있었다.


이 같은 식민지 상화에서 단군이냐, 기자냐 하는 논쟁은 계속돼왔다. 하지만 점차 단군이 우위를 차지, 민족의 시조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해방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자 자연히 국가차원에서 단기라는 연호와 개천절이라는 국경일도 만든다. 이렇게 해서 단군을 모체로 한 상상의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가 민족주의 사학이고 현재의 주류다.


대 : 그렇다면 민족주의라는 것은 실증적이지 않기 때문에 배제해야 할 것으로 보는 건가?


교수 : 아니다. 나는 민족주의 역사학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서로 통합하게끔 이끌어주고, 대한민국이 태동한 후에도 국민을 다시금 뭉치게 하는데 있어 민족주의 역할은 대단히 컸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 시기에는 민족주의 감정을 동원해 산업화를 이룩했다.


다만, 민족주의는 ‘상상’으로 구성된 것이고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 오히려 부정적인 역할이 드러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이 보다 나은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선진적인 역사관이 필요하다.


대 : 교수님은 잘못된 역사인식(민족주의)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이웃나라와는 부질없는 전쟁만을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통합의 역할을 수행했던 민족주의가 왜 한국인들을 분열시킨다고 생각하는가.


교수 : 민족주의는 80~90년대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인들을 분열시키기 시작했다.


대 : 정치적인 이유로 말인가. 설명 부탁드린다.


교수 : 한국인들의 분열은 바로 통일 운동으로 촉발됐다. 북한과 대화·타협을 추구하는 운동이 (북한에 강경했던 사람들과 대립하며 한국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발전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민족통일을 촉진하는 운동이라는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남북이 통일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을 장차 소멸될 나라로 상정하고 있다. 민족주의 역사학이 부각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이다.


대한민국을 어디까지나 민족의 분단을 초래하면서 성립한 남한만의 단독정부라는 역사인식이 강화되면서 통일운동이 활발해졌다. 이 통일운동을 민족주의 역사학이 뒷받침한 것이다. 자유민주적 통일을 추구해왔던 우리는 그것을 초월하는 우리민족끼리 통일론이 나왔을 때부터 좌·우, 진보·보수로 본격적으로 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족주의는 소위 ‘묻지마’ 식 통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반민족적 세력이 비도덕적으로 세운 잘못된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민족주의는 이제 비판적으로 수용해야한다.


대 : 하지만 ‘통일’을 위해서 대중들에게 민족이라는 개념은 필수적이지 않나?


교수 : 그렇다. 남북이 한민족으로서 같은 공동의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고 공통의 언어·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통일의 당위성은 민족주의에서 나온다.


하지만 통일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써 보편성을 갖고 여러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통합성을 갖지않을 때는 통일은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 민족이라는 개념 가지고는 통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남북의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이 낮은 수준의 공통성이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선언을 발전시킬 어떠한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남북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선언을 구체화시키는데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국호, 국가의회 구성 등 모든 사안의 논의가 쉽지 않다.  


따라서 통일은 민족이라는 차원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차원에서, 하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갖는 국민으로서 접근해야한다.


▶대학생 대담 참여자


김승재(연세대 신문방송학) 김형주(연세대 신문방송학), 김초롱(경희대 언론정보학), 이승수 (연세대 신문방송학), 황인혜(동국대 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