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를 끝까지 따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족주의’라는 말이 일종의 성역(聖域)처럼 군림하고 있다. 하기야 “우리민족은 천손족(天孫族)이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다”라고 말하는 데에 “이의(異議) 있습니다”라고 공언하면 자칫 그 자리에서 뼈도 못 추리고 작살나는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마패(馬牌) 같은 ‘민족주의’를 이제는 냉철하게 정리할 때가 되었다.


우선 ‘민족주의’를 한 시절의 무시 못 할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성전(聖典)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다. 일제시대가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1945년의 8.15 해방으로 끝났다. 뭐? 해방공간에서도 민족주의가 적실했고, 그것대로 돼야 했으며, 그것이 미국과 이승만 때문에 좌절됐으니,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웃기지 말라. 8.15 이후로는 ‘민족주의’의 시대가 아니라, 세계정치가 자유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로 용쟁호투(龍爭虎鬪)의 주제를 바꾼 시대였다. 따라서 그 때는 ‘민족주의’가 미국의 대일(對日)전쟁에서 일정한 쓸모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서방세계를 삐딱하게 보는 아시아 민족주의는 그 때부터는 오히려 소련 중공 호치민의 베트남에 대해 우정의 코드를 대는 반(反)자유진영의 한 축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른바 ‘비동맹 노선’이나 ‘제3세계론’이 그러했다.


‘민족주의’나 비동맹노선이나 제3세계론은 흔히 자신들은 반(反)서구지만, 친(親)공산주의는 아닌 중립, 중도 진영이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현실적인 힘이 있다고 반서구(反西球)와 반소(反蘇)를 동시에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들은 공산진영에 실컷 이용당하다가 소멸하고 말았다.


한국의 ‘민족주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우리는 극우도, 극좌도 아닌 민족혁명 세력이다”라고 자처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좌파 민족주의자들은 아예 북한 정권의 고관들로 흡수되었고 우파 민족주의자들은 남쪽에서 남북협상을 운운 하다가 북에 가서는 허수아비, 남에 돌아와서는 ‘반체제 인사’로 몰렸다. 남과 북 양쪽에서 ‘오리알’이 된 셈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당시의 ‘민족주의자’들이 도덕적으로나 가치적으로 잘못 됐다기보다는, ‘실력 없이 현실의 추세에 거역한’ 순수주의자들의 패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한 편에서는 ‘고매한 도덕적 롤 모델(role model)’이라 칭송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택도 없는 도로(徒勞)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민족주의자들은 극우도 극좌도 아닌 중도로 귀착했다기보다는, 자신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결과적으로는 최소한 대한민국을 반일(反日) 민족주의라는 기준에서 볼 때는 “뭔가 잘못 된 나라”라고 보는 쪽으로 경사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민족주의’는 이승만, 박정희를 평가할 때, 그들의 정치적 과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에는 대단히 인색하다.


그러나 어쩌랴. 대한민국은 어쨌든 이승만 박정희가 떠받든 대한민국 건국정신 때문에 이 만큼 올 수 있었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옛날에는 첨단적 이념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철지난 향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민족자긍’에 대한 열정은 높이 사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제는 김일성 김정일, 김구 김규식이 대표할 수 없다. 한민족의 ‘민족자긍’ ‘민족발전’ ‘민족번영’은 이제는 오직 대한민국 헌법에 기초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이 전적으로 떠맡아서 끌어나가고 대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제는 대한민국이 ‘민족주의=민족 번영 전략’을 김일성-김정일로부터 빼앗아 와야 한다. 원래 우익은 민족주의, 좌익은 국제주의였다. 이게 한반도에서는 거꾸로 돼 왔다.


김정일은 이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헌법 조문 상에서도 포기했다. 남은 것은 ‘민족주의’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로부터 ‘민족주의’도 우리 것으로 박탈해 올 차례다. 그러면 그들에게 남는 것은 오로지 적나라한 ‘선군정치’ 즉 마적단적 생존법밖엔 없을 것이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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