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로 얼룩진 유고연방의 몰락

▲ 몬테네그로 분리독립을 기뻐하는 주민들

동유럽 발칸 반도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 연합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양분된다. 몬테네그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연합으로부터의 분리를 통과시켰다.

세르비아-몬테네그로의 양분은 옛 유고 연방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한다. 이로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6개 공화국이 결합해 출발한 유고 연방이 다시 6개 공화국으로 모두 나뉘게 되었다. 몬테네그로 분리와 함께 완전히 막을 내린 지난 시간 유고 연방의 굴곡과 영욕은 이제 역사의 페이지에 영원히 저장된다.

옛 유고 연방은 1946년 사회주의 혁명가 요제프 티토에 의해 건설되었다. 유고 연방은 동중부 유럽에서 유일하게 소련의 도움없이 자체적으로 사회주의를 이룩했다. 그런 만큼 그 중심 인물 티토는 주목을 받았다. 티토는 수정주의의 낙인으로 스탈린에 의해 코민테른에서 제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내에서 유고 연방의 위상은 높았다.

독자적 경제 노선과 비동맹 외교 그리고 유고슬라비즘(유고 민족주의)을 요체로 하는 ‘티토이즘’의 탄생도 그런 위상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티토이즘은 유고 연방을 묶는 단단한 끈이 되었다. 어쩌면 그러한 역사적 유대가 가세한 연유로 유고 연방의 해체 과정은 유혈이 낭자하는 심각한 내홍을 거쳐야 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에는 밀로세비치의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가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10여년간 내전

어쨌든 탈냉전은 견고한 유고 연방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동구와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속에서 유고 연방도 해체의 폭풍을 비켜가지 못했다. 소련 연방이 평화적으로 분리 해체된 반면 유고 연방의 분리 과정은 피의 전쟁을 수반했다.

19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세르비아 주축의 연방공화군이 슬로베니아를 공격했다. 1990년 최초 자유 선거에서 세르비아는 공산당 서기장 출신 밀로세비치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비공산계열의 정권을 탄생시킨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보다 느슨한 형태의 연방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91년 6월 25일, 분리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티토 사후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운 밀로세비치는 연방의 붕괴를 절대 묵과할 수 없었던 관계로 슬로베니아를 필두로 한 분리 움직임에 쇄기를 박으며 대대적인 탄압 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곳곳에서 내전이 발발했다. 양상은 공화국 내 다수 민족과 중앙 정부의 지원을 받은 세르비아 소수 민족 간의 내전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면 크로아티아에서는 크로아티아 민족이 다수인 반면 세르비아가 소수 민족이 되어 상호간 격렬한 유혈 분쟁이 잇따랐다. 크로아티아 정부군이 세르비아 계의 전략 거점을 타격하면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유고 연방 중앙 정부는 자민족 세르비아계 저항군을 지원해 크로아티아를 공격했다. 내전은 EU와 유엔이 개입함으로써 해결의 가닥을 잡았으며 결국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승인받게 된다.

같은 해 9월에는 마케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다행스럽게도 연방 정부의 평화적인 승인이 이루어 졌다. 그러나 연이은 보스니아의 분리 독립은 평화적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또다시 유혈 참극으로 치달았다. 보스니아는 국민투표로 분리 독립을 통과시켰으나 보스니아 내 40%를 차지하는 세르비아계가 이에 불복, 보스니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연방군은 역시 세르비아 자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보스니아를 공격했다. 세르비아계는 초기 전투의 승리로 보스니아 영토의 7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또다시 UN이 개입하였으며 보스니아에 평화유지군(PKO)이 파견되었다.

보스니아 PKO는 유엔 평화유지 활동의 ‘실패한 미션’으로 기록되었다. 보스니아 평화유지군은 눈앞에서 어이없는 참극을 목격해야 했으니 경무장한 평화유지군을 무장해제한 채 세르비아 정규군이 수천명의 보스니아 회교도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무기력한 평화 유지 활동은 강한 회의에 휩싸였고 유엔의 권위는 땅에 추락하였다. 내전은 결국 회교-크로아티아 연방과 세르비아계 공화국의 1국가 2체제 연방을 구성한다는 협정(데이턴 협정)을 맺고 3년에 걸친 유혈 분쟁의 막을 내린다.

유고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발생한 유혈 참극으로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사태는 코소보 사태이다. 대(大)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선동한 밀로세비치는 연방 소속 6개 공화국 외에 자치주로 인정되었던 보이보디나와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 버렸다. 자치권을 박탈당한 코소보는 1992년 코소보 공화국을 선포한다. 연방 붕괴의 유혈 사태가 이제야 잦아들던 1998년, 코소보 해방군이 무장 봉기를 선언해 나섰다. 세르비아 정규군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은 물론 반군 거점 지역의 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이른바 ‘인종 청소’를 감행하였다. 코소보는 알바니아계 회교도가 인구의 90%를 차지한 반면 세르비아계는 10%에 지나지 않았다.

뒤늦은 국제사회 개입, 내전 희생자 키워

이러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중국이 UN을 통한 개입을 주장하며 수수방관에 머무르자 미국과 유럽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통해 나토군을 출격시킴으로써 학살을 중단시켰다. 연방군이 물러나자 알바니아계 회교도는 세르비아계에 대한 보복 테러를 자행하였다. 결국 UN은 보스나아 평화 유지 활동의 좋지 않은 기억을 딛고 재차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국제 사회는 밀로세비치가 문제라고 보고 그의 퇴진을 종용하게 되고, 장기간의 전쟁에 지친 국민들의 저항으로 밀로세비치는 대통령을 사임하게 된다. 그 후 유엔의 유고 전범 재판소가 차려졌으며 밀로세비치는 전범으로 기소되어 수감되는 신세가 된다. 밀로세비치는 지난 3월 11일 옥중에서 사망했다. 그는 죽었지만 코소보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평화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유고 연방의 해체는 오늘 날 세계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탈냉전 이후 세계는 두 가지 양상을 보여 준다. 통합화, 세계화라는 현상과 분권화, 지방화라는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EU나 NAFTA와 같은 통합화의 이면에는 수많은 신생 국가들의 분리 독립이 이어지고 있다. UN은 창설 당시 51개 국가에서 출발해 1960~70년대 신생독립국의 폭발적인 탄생과 탈냉전기 소련 연방의 해체 등을 거치며 무려 192개 국가로 늘어났다. 지구 상 국가의 수는 지난 아테네 올림픽 출전국 수가 202개로 집계되었으니 이제 막 분리 독립한 몬테네그로가 그 마지막 숫자를 다시 또 갱신하게 된 셈이다.

오늘 날 세계는 통합화, 세계화를 통해 상호 공존공영의 방법을 훨씬 효율적이며 현실적으로 찾아 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민족적 정체성을 향해 분리와 독립을 추구하는 지역은 많다. 민족주의가 진보는 아닐지언정 그 근저에 뒤늦은 ‘근대주권의식’이 자리한 것 마저 무시할 수는 없다. 오늘 날 결과적으로 이 두 현상은 모두가 세계 진보의 한 단면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종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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