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적 사변” 체제선전할 듯

북한은 5일 ‘광명성 2호’ 발사도 “민족사적 사변”이라고 대대적인 체제선전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1998년 8월 광명성 1호 발사에 대해선 “일대 사변”이라고 이어 2006년10월 핵시험은 “민족사적 사변”이라고 선전했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1998년 8월31일 광명성 1호 발사후 “사상의 강국, 군사의 강국으로 위용 떨치는 주체조선이 과학기술 분야와 경제력에서도 막대한 잠재력을 가진 강대한 나라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과시한 일대 사변”이었다고 자평했다.

당시 이 방송은 북한 역사상 “경이적인 사변들”이 많았다며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미제 침략자들을 무릎꿇게 한 50년대의 전쟁승리가 그러했고, 폐허위에서 불사신처럼 일떠선 50년대말 60년대의 천리마대고조가 그러했으며, 70년대와 80년대 사회주의 대건설과 90년대의 사회주의 수호가 그러했다”면서 광명성 1호 발사를 그 연장선에 놓았었다.

이번 로켓 발사에 앞서 북한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비공식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지난 4일 ‘위성발사’ 성공을 기정사실화한 기사에서 “사변”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에서 사변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일'(조선말대사전)을 일컫는다. 이에 비해 남한에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천재나 그 밖의 큰 사건’ 혹은 `전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등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북한은 핵시험 후엔 “우리 조국이 단행한 강력한 군사적 억제력의 시위는 약소국의 수난만을 체험해야 했던 이 땅에 영원한 강국의 성새를 쌓은 민족사적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들은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도 “민족사적 사변”으로 내세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의 의지와 애국애족의 대용단”에 의해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었다는 것이다.

2006년 8월12일자 평양방송은 “나라와 민족이 갈라져 55년만에 처음으로 있은 평양상봉과 6.15 공동선언 발표는 내외에 일으킨 파문과 충격으로 보나 북남관계와 나라의 통일위업 그리고 국제 정치정세에 미친 영향으로 보나 실로 특기할 민족사적, 인류사적 사변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7년 10.4 선언의 채택도 북한 매체들은 “우리민족끼리 기치 밑에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의 새 민족사를 개척해 나갈 것을 확약한 또 하나의 특기할 민족사적 사변”으로 평가한다.

이밖에 김정일 위원장의 출생, 북한 정권 수립, 주체사상의 창시, 단군릉의 개건, 1984년 대남 수재물품 전달 등도 “민족사적 사변”으로 선전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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