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공동체통일방안’ 발표 후 통일정책 경쟁 북에 앞서”

한국이 북한과의 ‘통일 정책’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은 지난 1989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수립된 이후부터라는 평가가 나왔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수립 20년을 기념해 통일연구원이 10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개최한 학술회의에 참석해 “통일 논의에 있어서 논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북한의 ‘연방제’에 우위에 설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냈다”며 “이 때를 기점으로 북한의 어떠한 공세도 막을 수 있는 논리가 만들어 졌다”고 말했다.

연방제(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는 북한이 1960년부터 주장해온 남북통일에 관한 방안이다. 선결조건으로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세우고 있으며, 한국과는 달리 1민족, 1국가, 2체제 방안이다.

강 전 장관은 “북한은 이때부터 남북관계에서 수세에 몰리게 됐다”며 “특히 시기적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는 시점과 맞물렸다. 북한이 아무리 자립경제를 주장한다 하더라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은 우리 체제의 우위를 확실히 보여준 셈”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80년대 일어난 국내 상황이 우리의 우위를 보다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쪽은 당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통일전선을 형성해 남쪽의 (친북)세력을 육성하게 된다”며 “이후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막아내지 못해 남남갈등의 오랜 뿌리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을 채택하는 등 각종 대화에 나선 것은 (남한에서 혁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시간을 끌기 위한 ‘대담한 후퇴’ 작전이 아니었나 싶다”고 분석했다.

과거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만들었던 당사자들이기도 한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당시 이 통일방안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변화하는 국제적 정세에 맞춰 북방외교가 추진됐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북방정책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갖고 있다”며 “정부는 북한에 대해 화해와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동시에 동구 국가들과도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방정책은 국제무대에서 남북 간 대결 외교를 상호 협력의 외교로 바꾸려 했다”면서 “한국이 중국, 소련과 수교하면서 북한도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개선하는 이른바 ‘교차승인’은 공동체통일방안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지만 북한의 핵 집착이 이를 가로막았다”고 지적했다.

강 전 장관은 “북방외교가 전개되는 동시에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북쪽에서도 위기를 느끼게 됐다”며 “사회주의 시장을 상대로 경제 건설을 해 온 북한은 동유럽권의 붕괴로 경제적 지원을 받을 방법이 없게 되면서 상당히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됐다”고 말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89년 9월 11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 특별연설을 통해 발표한 통일방안으로 남북이 과도적 통일체제인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통일민주공화국을 수립하자는 것이다.

한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학술회의 축사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통일국가는 이미 20년 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담겨있지만 핵을 앞에 두고 민족공동체를 논의할 수는 없다”며 “북한의 비핵화는 민족공동체 논의를 위한 전제조건이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토대”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