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단-조총련 ‘화해’, 위험해진 ‘우리민족끼리’ 동거

▲ 하병옥 민단 단장(왼쪽)과 서만술 조총련 의장이 17일 오전 도쿄시내 조총련 중앙본부에서 회담에 앞서 포옹하고 있다ⓒ연합뉴스

17일 오전 재일본대한민국 민단(민단) 하병옥 단장을 비롯한 집행부 7명이 도쿄 시내에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를 방문해 50년만의 화해의 악수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재일동포 사회의 민족적 단합을 위해 힘을 합쳐나가기로 하고, 특히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민족적 운동에 동참하기로 했다.

양측 대표가 서명한 합의문에서 민단과 총련은 이번 협력이 6.15 공동선언이 천명한 ‘우리민족끼리’ 이념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조총련은 이번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탈북자 지원센터 해체와 재일동포 모국방문 사업 중단을 요구했고, 민단은 이를 유보키로 결정했다.

또, 양측은 6.15 기념행사에 공동으로 참여하고, 8.15 행사도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이러한 양측의 합의에 대해 국내에서는 ‘50년만의 화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 여당은 물론 DJ 방북 등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나라당도 ‘아름다운 만남’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이번 민단과 조총련의 만남을 민족의 화해로 칭송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사실 이번 합의를 꼼꼼히 살펴보면 쌍방 모두가 한 걸음씩 뒤로 물러 공통분모를 찾은 것이 아니다. 민단의 일방적인 궤도수정만 있었을 뿐이다. 합의문의 주요 맥락이 ‘우리 민족끼리’ 이념에 근거한 ‘6.15 정신 실천’이라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민단이 참여정부의 대북정책과 일맥상통하는 민족공조로 선회한 배경은 무엇일까?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민단 변신의 가장 큰 이유를 재정문제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재외동포 지원 명목으로 매년 80억원 상당을 민단에 지원해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가 재외동포 지원금을 줄여가기로 정책을 수정하자, 민단은 비상이 걸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8억여원이 줄어든 72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지난 2월 민단 단장에 선출된 하병옥(70) 씨는 4월 한국방문 당시 정부 지원금 축소가 시기상조라며 정책 수정을 요구하는 공문을 직접 제출한 바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하 단장 일행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재정지원에 관한 공문을 정부에 접수시켰다”면서 “정부의 지원 축소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조총련과 마찬가지로 이미 재일동포 사회에서 힘이 빠져 있는 민단의 위상을 볼 때 정부 지원은 사활적인 문제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축소방침이 민단에게 어느 정도 위기감을 던져줬을지 짐작이 간다.

올 2월 새로 선출된 민단 지도부 핵심 인사들이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것도 이번 합의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 단장 자신도 조선학교 교사 출신이다. 동포 사회의 분산과 젊은층의 외면으로 심각한 위상하락을 겪고 있는 민단의 이 같은 행보를 재일동포 전체의 의견으로 봐서는 안 된다. 민단 내에서도 반대여론이 많다.

참여정부가 남북공조를 통해 대선국면을 돌파하겠다는 구상을 굳힌 이상, 국내외적으로 ‘우리민족끼리’ 노선이 확대될 것은 이미 충분히 예상됐다. 이번 민단의 행보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단은 조총련과 화해 제스처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궤를 같이 해주면서 지원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민족공조 정책에 국내 비판 여론이 높듯이, 민단의 이러한 행보는 일본 국민들의 여론과는 배치돼 이들과 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십년간 싸우고 원수처럼 지내온 당사자들이 화해한다는 것은 기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화해가 양측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면 결국 더 큰 분열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번 민단과 조총련의 50년만의 화해가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주현 취재부장 shin@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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