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 ‘從北’ 끌어안고 끝내 벼랑끝으로

▲ 3일 민노당 임시 당대회장 앞에서 민노당 학생위원회 소속 일부 대학생들이 당내 종북주의 세력을 비판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데일리NK

‘종북(從北)주의 청산’을 통해 진정한 진보정당으로의 변신을 꿈꿨던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대표 심상정)의 꿈이 당내 ‘자주파(NL)’의 집단 반발로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3일 서울 시내 센트럴시티에서 열린 민노당 임시 당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대표가 제출한 ‘혁신안’이 상정됐으나, 원안에 담긴 ‘일심회 사건 주동자들에 대한 제명 처리안’에 대해 ‘아예 삭제하자’는 자주파 측의 수정안이 발의돼 재적 대의원 64%의 찬성으로 가결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비대위의 혁신안을 지지하는 평등파 대의원들이 집단적으로 퇴장함에 따라 이덕우 당대회 의장은 정족수 미달로 ‘산회(散會)’를 선언했다. 순간 당대회 결과를 국민에게 전하기 위해 늦은 밤까지 행사장을 지키고 있던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허탈한 탄식소리가 터져 나왔다.

당대회 현장에서는 평등파 소속의 일부 당원들이 ‘종북주의 청산’을 주장했고, 이에 자주파 당원 수 십 여명이 이들의 피켓과 현수막을 가로막고 “최기영, 이정훈(일심회 관련자) 제명 반대”를 외쳤다. 또 “언제까지 (북한의) 지령을 받고 운동할 텐가?”라는 피켓을 든 당원들도 있었지만 이내 자주파 당원들에 가려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창당 이후 8년이나 함께 해왔던 이들이 분당 위기로까지 치달은 것은 NL-PD 논쟁이 단순한 당내 계파(系派)의 싸움이 아닌, 정파(政派) 간의 이념적 논쟁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파는 권력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지만, 정파는 사상과 이론, 노선을 중심으로 모인다.

계파 간에는 권력 나눠먹기가 없으면 ‘타협’이 불가능한 것처럼, 정파 간에 이론적 합의 없는 ‘단결’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계파 정치에서는 수장(首長)끼리 물밑 협상이 인정되지만 사상.이론적 공통성을 추구하는 정파 정치에서는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민노당의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는 출범 전부터 ‘불안한 동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자주파와 평등파는 운동적 지향과 조직 논리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평등파는 계급운동을 기본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면서 노동자, 농민 중심의 계급정당을 통해 자본가 계급의 정당과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자주파는 반미-통일을 운동의 기본 목표로 설정한다. 독자 정당에 대한 요구도 그리 높지 않다.

이런 관점은 민노당의 정체성 및 선거전략 분야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평등파는 민노당이 자본가 계급에 맞서 노동자, 농민뿐 아니라 전체 서민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으나, 자주파는 민노당을 반미.통일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등파의 ‘독자정당론’은 기성 정당과 마찬가지로 원내 진출을 최고 목표로 한다. 때문에 평등파는 북핵위기 이후 당내 ‘종북주의’ 경향이 국민지지도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 일심회 관련자들에 대한 제명 등을 골자로 하는 ‘혁신안’을 당 대회에 상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혁신안 통과가 부결되자 심 대표와 비대위는 4일 총사퇴했다. 아직까지 가시화되지는 않았지만 노회찬 의원 역시 이전부터 “당 대회 혁신안 부결시 탈당하겠다”는 뜻을 언론에 밝혀왔다. 심 대표와 노 의원이 배수진을 쳐가며 혁신안을 밀어붙였지만 자주파의 조직력을 끝내 넘지 못했다.

하지만 평등파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취할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론 조승수 전 의원을 비롯한 당내 강경 평등파 일부가 탈당을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그 세가 미약한 상황이다. 심 대표와 노 의원의 경우 4월 총선을 앞두고 대중 정치인으로서 선택의 폭이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비례 국회의원직을 획득하게 된 배경에는 자주파의 조직력에 힘입은 바 크다. 민노당의 전국 득표율을 높인 주세력이 자주파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자주파가 가지고 있는 ‘조직력의 단맛’을 본 평등파 의원들이 이를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이 평등파 출신 의원들의 딜레마이다. 지난 4년 간 ‘운동가’가 아닌 ‘정치인’의 길을 걸어온 평등파 의원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이 민노당에 남든지, 떠나든지 4월 총선의 결과는 뻔하다. 국민들은 이미 민노당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간첩단 관련자 하나 제명하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 자체가 자기 기만이자 사기극임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대위의 혁신안을 거부한 민노당은 지금 자멸의 벼랑 끝으로 크게 한발을 내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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