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진보정당’ 노릇 이제야 시작하나?

지난 3일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북한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이상 민주노동당의 불가침 성역이 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던 박용진 전 민노당 대변인이 이번에는 납북자 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한 노동계에 자성의 뜻을 밝힌 글을 발표했다.

박 전 대변인은 9일 민노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우리가 잊고 있었떤 노동자 가족의 절망에 대해 사과하면서”라는 제목으로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대표를 만난 후의 심경을 고백하는 글을 게재했다.

지난 달 19일 일간지에 납북된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하는 광고를 낸 최 대표에 관한 기사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덜컥 만날 약속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 박 전 대변인이 최 대표를 만나게 된 이유.

박 전 대변인은 “지난 5년간 민노당의 연락을 기다렸다”는 말을 던지며 눈물을 쏟는 최 대표를 앞에 두고, “‘약자’ ‘인권’을 앞세우면서도 납북자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던 자신들이 모습이 부끄러워져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제(8일)납북된 동진호 선원인 정일남씨가 금강산에서 어머니를 18년만에 만나는 장면을 보고, 아빠에게 환갑생일상을 차려드리고 싶다던 착한 큰딸 최우영씨가 생각났다”며 “이 마음을 당원들에게 어서 전하고 싶어, 최 대표를 만난 후 작성한 글의 앞 부분만을 우선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아래는 민주노동당 박용진 전 대변인의 글 전문>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 회장을 만났습니다.

1. 나와 우리들의 무관심.

내가 어쩌자고 그를 만나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처음 신문에서 관련기사를 보고 무언가 답답하고 미안해 며칠을 고민하다가 무작정 전화를 걸었는데, 너무 반가워하고 너무 기뻐하는 그에게 덜컥 만날 약속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최우영. 36세 여성이다.
아마도 많은 당원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납북자가족협의회’ 회장의 직을 맡고 있는 그는 얼마전 한 신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광고를 내보내 환갑을 앞둔 아버지인 피랍어부 최종석씨의 송환을 읍소했었다.

많은 당원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납북자환송문제’에 있어 문외한이다.
아니, 무관심한 사람이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다. 지난 세월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오른쪽에 의한 왼쪽에 대한 가해’와 ‘소수자와 소외된 사람, 가난한 사람에 대한 폭력’에 관심갖고 힘 쏟으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무지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이다.

단 한 번도 납북자들의 송환에 대해 입장을 밝히거나 남과 북 당국에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한 것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변의 당 활동가들에게 납북자송환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서성거리듯 물어보았지만 다들 당황해 할 뿐 뾰족한 대답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

단지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인권’이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당이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들 모두가 이 문제를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2. “지난 5년 동안 민주노동당에서 연락주기를 기다렸습니다.”

만나기로 한 지난 11월 2일, 난 하루종일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태도로 그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저 개인 차원이었기 때문에 더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과 달리 그를 만나기 몇 시간 전부터는 괜히 만나자고 한 것이 아닐까 하는 후회 비슷한 마음마저 들었다.

납북자가족협의회.

보통 우익보수단체들과 함께 성명서도 발표하고, 북한에 대해 반인권적이라는 공격을 하는 곳마다 꼭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 단체로 생각된다. 실제로 확인해본 납북자가족협의회 홈페이지에는 얼마전 정부가 발표한 ‘전향장기수북송방침’에 반대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이 단체가 진짜로 보수적이고 우익적인지 내가 알 길이 없었고, 그 단체가 보수적이든 말든 납북어부의 송환문제가 장기수 선생들의 송환문제와 다를 바 없이 ‘인권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민주노동당의 활동가가 만나지 못할 이유란 없었다. 난 사실 그를 만나 ‘인권문제’로 접근이 가능한지, 그 단체가 민주노동당의 관심과 연대를 원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난, 무려 5년동안이나 민주노동당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언젠가 꼭 연락을 주고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하고, 기쁨에 들떠 나를 신기한 양 처다 보기도 하고 지난 세월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던 그 앞에서 ‘미안하다’는 말 말고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음식을 제대로 만지작거리지 조차 못하면서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가 민주노동당이나 노동조합, 운동단체에 다가서면 모두가 뒷걸음질을 했다고 한다. 다가서면 물러서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먼저 연락주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고 했다.

3. 나도, 우리 아빠도 노동자다. 관심을 가져달라.

‘납북자가족협의회’가 보수적인 단체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그 회장인 최우영씨도 꽤나 보수적이거나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나의 그런 선입견은 금새 깨졌다. 그는 사회보험노조 조합원이다. 그것도 조합의 빨간조끼가 자랑스럽다는 열성조합원이다.

다른 노조도 아니고 사회보험노조라고 하니까, 민주노총 내부에서 가장 전투적인 노동조합 중 하나이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가장 많은 사업장중 하나이고 가장 정치의식이 높은 노동조합 중 하나인 곳의 조합원이라고 하니까 나는 내심 안심이었지만 ‘혹시 민주노동당원이냐?’ 물어본 첫 질문에 그는 따지듯이 말했다.

“제가 왜요? 제가 왜 민주노동당 당원이어야 하죠? 우리 아빠 문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는 그토록 적극적으로 하면서, 유독 우리 아빠의 문제, 잊혀진 노동자가족의 아픔에는 관심갖지 않는 당의 당원이어야 하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언젠가 대학로에서 있었던 노동자대회였어요.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님이 장기수분들을 연단에 모시고 ‘통일일꾼’이라고 부르면서 박수를 유도하셨어요. 어쩌면 똑같은 처지인데 저분들에게는 저토록 정성을 쏟으시고 우리 아빠와 가족들에게는 말한번 걸어주지 않는 민주노동당이 서운했고 그 노동자 대회를 개최한 민주노총이 원망스럽더라구요.

우리 사회보험위원장에게 가서 따졌어요. ‘내가 누구 딸인줄 아느냐. 왜 우리아빠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질 않느냐?’ 그날 처음으로 빨간조끼를 벗어던져버리고 싶었을 정도였어요. 차라리 혼자 한국노총으로 가버릴까 싶은 생각도 했을 정도예요.

연단 아래 계신 김혜경 대표를 일부러 찾아갔어요. 인사라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요. 처음 인사를 했더니 김대표님이 얼마나 반갑고 살갑게 대해주셨는지 아세요? 사회보험노조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시면서 위로를 하시더라구요, 우리 투쟁중인 것도 다 아시고… 그런데 제가 명함을 내밀자 얼굴이 확 달라지셨어요. 그러고는 곧 연설이 있다면서 자리를 피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날 얼마나 서럽고 힘들었는지 아세요. 아 그렇구나… 나와 우리 가족들은 사회보험노조 일개 조합원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구나…하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그는 벌겋게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을 보지 않으려고 나는 식탁 끝선에 눈길을 고정시킨채 손가락만 만지작 거렸다. 그의 말이 잠시 잠시 멈출때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 나는 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알아요… 어떤 단체나 정당에서는 우리문제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걸… 그래도 그런 단체는 성명서라도 같이 발표해주고 집회때 피켙하나라도 들고 나와서 함께 해주니까 고맙더라구요. 그런 단체들하고 같이한다고 저나 저희 단체를 ‘보수적이고 우익적이다’라고 비판하는 게 맞나요? 오히려 운동단체, 나의 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그리고 민주노총이 만든 민주노동당이 이런 노동자 가족들의 고통에 더 관심갖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그에게 이해를 구했다. 이 젊은 나도 당신을 만나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고 망설였다고. 누구라도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만남을 하게되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김혜경 대표로서는 전혀 뜻밖의 갑작스런 만남에 당황해 하셨을 것이라고.
그 따뜻하고 당당한 양반이 얼마나 당황했을지 난 짐작이 간다고.

민주노동당이 여러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듯이 최회장님도 우리들이 갖는 당황스러움에 대해 조금의 용서와 이해를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다행히 그는 내 말을 이해하고 수긍했다. 김혜경대표에 대한 오해도 깨끗하게 풀렸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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