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 北 1차 공작대상…從北 자양분 역할”

북한 노동당 225국과 연계된 반국가단체 ‘왕재산’ 사건과 관련해 현직 구청장부터 시의원, 전 국회의장 정무 비서관 등까지 공안당국의 수사 대상에 오르며 종북(從北)세력들의 제도권 진입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는 모양새다.


조직의 실체, 규모 등 간첩단의 면모가 명확히 드러날 경우 정계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이란 관측이다. 이번 사건에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 출신 인사들이 대거 관여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06년 ‘일심회’ 사건이 재연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일심회 사건이 민족해방(NL)파와 범좌파(PD)간의 결별 수순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진보정당 내 종북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현재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은 오는 9월 4일까지 ‘새로운 진보정당’ 협상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논의를 진행중이다.


더불어 내년 총선과 대선 등에서 반(反) 한나라당이라는 기치 아래 야권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정치권의 움직임에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제도권에서 활개치는 간첩, DJ-盧 정부가 공간 만들어줘= 이번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인사들은 제도권에 깊숙히 발을 담그고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이후 386출신 인사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비호 아래 지하당과 직간접적인 영향을 맺고 있는 인사들까지도 정부 및 정치권에 진출할 수 있었던 영향 탓이다.  


2000년에는 진보적인 대중정당을 표방한 민노당이 창당된 데 이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10석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킴으로서 제도권 진출 기회는 더욱 확대된다. 김대중 정부에 뒤이은 노무현 정부 아래에서도 종북주의자들의 진출은 확산 양상을 보였다.


참여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이 추천하는 인사를 노동부 장관으로 입각시키려고 했다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증언은 당시 정부와 민노당과의 코드가 상당히 일치해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에 따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과 사실상 종북세력의 제도권 진출에 발판이 된 민노당이 간첩활동의 온실(溫室)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간부로 활동했던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데일리NK와 통화에서 “주사파의 본산으로서 당 출범때부터 북한과 연계됐던 민노당은 여전히 종북집단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 대표는 또 “북한에서 남한 내 적극적인 협력자를 구할 때 민노당 내부를 살펴볼 정도로 민노당은 북한의 1차적인 공작 대상”이라며 민노당 사무부총장까지 연계됐던 일심회 사건을 그 대표적인 예로 꼽았다.


남한 혁명화 노선의 일환으로 북한의 간첩단과 연계된 활동은 2012년 총선·대선 등 남한의 중요 정치 일정과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 이번 ‘왕재산’ 사건은 남한내 간첩단 사건의 ‘빙산의 일각’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 대표는 “북한은 한국에 중요 (정치) 일정이 있을 때마다 개입해서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 했다. 총선·대선 등 중요 정치 일정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비공개적인 개입을 강화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도 이미 만들었을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번 사건에 전·현직 당직자와 지자체장 등이 연루된 민노당의 반발은 거셀 수 밖에 없다. 2006년 ‘일심회’ 사건에 이어 이번 ‘왕재산’ 사건과의 연관이 드러날 경우 오는 9월을 목표로 추진 중인 진보정당 통합 과정에서 우선 덮어뒀던 종북 논란이 다시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수사 과정은 좌파진영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실제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지난달 27일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등장하던 공안 탄압이 재현되고 있다”며 “치졸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다. 독재 정권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히며 공안당국의 발표에 앞서 이번 사건을 표면화했다.


2006년 북한 공작금과 지령을 받았던 일심회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만큼 이번에는 선공(先攻)을 택했다는 평가다.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 등을 염두해 이를 차단하기 위한 예고탄을 쏜 것으로 해석된다.


▶’왕재산’ 94년 민혁당 혼란기에 북의 지령으로 건설?= 한편, 민노당 등 좌파진영에서는 국정원이 이번 간첩단 사건을 ‘일진회’라고 밝혔다가 돌연 ‘왕재산’으로 명칭을 바꿨다는 점에서 급조된 간첩단 사건일 뿐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적발된 간첩단의 경우도 남한 호칭과 북한 호칭이 달라 ‘일진회’ ‘왕재산’ 명칭 두 가지 모두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하 대표는 “두 이름 모두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며 “일진회는 자신들끼리 부르는 이름이고 왕재산은 북한이 붙여준 이름일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과거 남한 내 지하당 조직인 중부지역당을 ‘대둔산’이라고 불렀고, 민혁당도 ‘관악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민혁당 총책이었던 김영환 씨는 ‘관악산1호’라는 이름으로 북한과 교신했다.


한편, 검찰이 ‘반국가단체 조직’ 혐의로 사법처리를 한 것은 지난 1999년 이른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 이후 12년 만이다. 1991년 만들어진 민혁당은 당시 남한 최대 자생 지하당으로 몇 단계 이상의 하부단위 활동을 거쳐야만 영입이 가능했을 만큼 조직 관리가 철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환 씨는 민혁당 결성되는 해 간첩선을 타고 북한에 밀입국했지만, 북한 현실에 회의감을 갖고 운동 전환을 모색하게 됐다. 이후 1994년 민혁당 지도부 내에서 운동 노선의 전환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일진회’가 1994년 결성된 점을 놓고 볼 때 북한이 민혁당을 대체할 새로운 지하당 건설을 서두른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1992년에 발생한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북한은 민혁당을 남한 혁명 지하당의 중심세력(줄기)으로 설정하고, 몇개의 지역별 지하당(가지)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왕재산’ 사건은 북한의 대남 공작사업의 일부분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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