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여기자들처럼 송환은 둘째치고 생사확인이라도…”

미국 서부 현지시간 5일 오전 6시경. LA 인근 버뱅크의 밥호프 공항에 보잉 전세기가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는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경비대에 체포돼 141일간 억류된 뒤 특사로 풀려난 미 여기자 2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비행기에서 나오자 기다리던 가족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유나 리 기자가 트랩을 내려오자 마자 딸 하나(5)가 엄마에게 달려갔다. 남편 마이클 살다테도 달려와 세 가족이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로라 링도 남편과 눈물로 재회했다.

두 여기자의 가족 상봉을 TV로 지켜본 많은 사람들. 가슴이 시큰해지지 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성 싶다. 모두들 잃어버린 제 자식을 찾은 것처럼.

유나 리는 아이를 안으면서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를 지켜본 KAL기 납치피해가족회 황인철 대표도 절로 몸이 떨리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는 이 재회 장면을 TV로 지켜보다가 ‘데일리엔케이’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기자들의 가족 상봉을 축하하지만 한 편으로 소외감에 비통하고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1969년 KAL기 납북 당시 아버지는 MBC PD였다. 같은 기자 신분인데 미국 기자는 송환되고, 우리 아버지는 40년을 억류돼 있어야 하니 도대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1969년 12월 11일 고정간첩 조창희에 의해 납북된 KAL(YS-11)기 납치사건에서 미귀환자 11인 중 한 명인 전 MBC 황원 PD의 아들이다. 그는 지금 당시 미귀환자 가족들을 모아 ‘KAL기 납치피해가족회’를 구성해 대표직을 맡고 있다.

황 대표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 아래서도 (송환 지시를 할 수 있는) 김정일의 관심에서 벗어난 KAL 납북자들을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정말 비통하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어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남한의 억류자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한국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며 “이번 기자 석방에 부응해 우리 KAL 납치피해자도 송환 협상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10년 전부터 송환에 관한 제대로 된 정책이 없었다. 처음부터 납북자 문제나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문제를 풀었어야 하는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추정한다”며 역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아쉬워했다.

황 대표는 “KAL기 납북자들의 송환 문제에 앞서 생사확인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송환은 그 다음문제이며 우리들(KAL기 납북가족)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국 여기자들은 북한에 억류된 141일 간을 생애 최악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유나 리 기자는 억류 4개월여 만에 풀려나 딸 하나를 꼭 껴안을 수 있었다.

그들이 생애 최악의 시절을 보낸 그곳에는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억류돼 있는 우리 납치피해자들이 있다. 당시 아버지를 기다리던 소년 인철은 이제 40대 아저씨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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