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핵검증 ‘착수’ 미룬 듯..북, 무반응

“반전의 기회를 잡기 어려워 보인다.”

정부 고위소식통은 7일 핵시설 불능화 작업의 중단과 원상 복구 방침을 밝힌 지난달 26일 이후 드러난 북한의 행보에 대해 ‘전술적인 맥락’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북한은 한국과 미국, 중국, 일본의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베이징에 체류하던 5∼7일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현장에 보내지도 않았다.

대신 핵시설 복구를 위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이어 봉인을 제거하고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폭스뉴스는 5일 미 고위관리들을 인용,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 핵시설에 붙여놓았던 봉인을 북한이 제거한 뒤 파이프와 밸브 등을 삽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까지 봉인 제거와 관련된 정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북한의 움직임이 위기지수를 올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가운데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검증방법에 동의하고 검증 프로토콜(요구안) 문제를 마무리하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할 수 있다는 제안을 했다.

힐 차관보는 6일 오후 중국 측 6자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부부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우리의 초점은 검증 프로토콜 문제를 마무리하는 것”이라면서 “그때가 되면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즉시 삭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현재 핵 활동에 대해 검증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 우리가 어떻게 핵 프로그램을 검증하는지에 대한 규정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미국의 입장은 과거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7월 열린 비공식 6자 수석대표회담 당시 미국은 검증 프로토콜 마련과 검증 활동 착수를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북한의 완강한 거부를 감안해 현 시점에서는 검증 계획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실제 검증활동은 사실상 차기 행정부의 몫으로 넘기려는 전술로 풀이된다.

정부 고위소식통도 “현실적인 시각에서 상황을 봐야 한다. 현 시점에서는 검증 이행계획까지만 만들어놓는 수준에서 일을 매듭짓고 다음 미국 행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대표적인 네오콘 인사로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6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북한이 부시 행정부의 심리를 읽고 핵 불능화 조치 중단 및 영변 핵시설 복구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 정권의 가장 위대한 외교적 성과중 하나인 북한과의 핵 협상이 위협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다”면서 이를 간파한 북한은 협상이 시작됐던 지난 6년 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테러 지원국 리스트에서 삭제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볼턴 전 대사의 말대로 북한이 차기 미국 행정부, 특히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를 기다리며 시간끌기를 할 경우 현재의 냉각국면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북핵 외교가의 시각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현재의 부시 행정부와 하고 있는 협상만큼 북한에게 유리한 여건이 쉽사리 조성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6자회담 의장국 중국이 모종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그나마 남은 유효한 카드로 주목받고 있다.

북한의 정권수립 60주년인 9.9절에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의 고위급 특사를 통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협상복귀’를 촉구하는 미국과 중국측의 메시지가 전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탕자쉬안(唐家璇) 국무위원이나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을 특사로 파견,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데 적잖은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북한이 이미 차기 미국 행정부를 기다리기로 작심했을 경우 중국의 중재노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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