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 3국 핵기술자 방북 의미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핵기술자들이 11∼15일 방북해 핵시설 불능화 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은 비핵화 2단계 조치의 이행을 위한 첫 가시적 행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달 중순께 개최될 예정인 6자 본회담에 앞서 핵보유 3국의 엔지니어들은 북한 영변 핵시설을 직접 둘러보고 북한 핵기술자들과 어떤 방법을 적용해 불능화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특히 지난 1∼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북한이 올 연말까지 모든 핵시설을 불능화하겠다고 미국측과 합의한 점을 감안, 핵기술자들은 비교적 단기간내에 핵시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구체적 대상과 방법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3국 핵기술자 방북의 의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3개국의 기술자들이 영변 핵시설 등을 직접 방문키로 한 것은 핵시설 불능화를 위한 구체적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방북 기술자그룹이 핵무기 보유국으로 한정된 것은 이들 국가 기술자들이 핵시설 해체 경험을 보유, 구체적 불능화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나라의 기술자들에게는 핵무기 프로그램과 관련된 시설물 내부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불문율 탓인 것으로 전해졌다.

핵기술자들의 방북은 지난달 16~17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비핵화 실무그룹 회의에서 처음 논의된 뒤 이달 1∼2일 스위스 제네바의 북.미 관계정상화 회의에서 구체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북한측은 자기들의 손으로 핵시설을 불능화하기를 꺼려 핵보유국 기술자들이 방북, 불능화 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북 활동을 통해 이들이 단일한 핵시설 불능화 방법을 도출해낼지, 아니면 짧은 시일내에 불능화를 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을 추려내 차기 6자 회담에서 최종 선택을 하도록 할지 여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불능화 이행을 위한 `도면’을 만드는데 실무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비유대로 차기 6자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관련한 `2단계 시공도면’이 나오려면 이들 기술자의 선행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의 방북은 비핵화 1단계 조치인 핵시설 폐쇄를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단이 지난 6월 방북한 것과 마찬가지로 비핵화 2단계인 불능화의 실제적 착수를 알리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방북 활동을 통해 도출될 결과물은 어떤 핵시설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불능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거론되는 불능화 방법은 원자로에서 핵 연료봉이 들어가는 통인 `노심(爐心)’을 제거하고 시멘트를 붓는 고강도 방식에서부터 원자로의 핵심부품인 제어봉 구동장치를 제거하는 방식,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작용을 하는 `냉각 펌프’를 없애는 방식까지 다양하다고 핵공학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방북 기술자들은 영변 핵시설 내부에 대한 조사활동을 벌여 적정한 불능화 방안을 마련, 6자 회담에서 보고할 예정이며 6자 회담 수석대표들은 그 보고 내용을 검토해 최종적 불능화 방안을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3국 핵기술자의 방문을 수용하고 핵시설 불능화 방안을 협의키로 한 것은 불능화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여준 조치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6자 회담서 합의도출 기대= 그동안 차기 6자 회담의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던 것은 이번에 추진되는 3국 핵기술자들의 방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던 탓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3국 기술자들의 방북 일정이 오는 11∼15일로 정해짐에 따라 차기 6자 회담은 그 다음주에 개최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6자 회담 참가국들은 최근 잇따라 개최됐던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 실무그룹회의 등의 결과를 토대로 한 후속 협의에서 구체적 결과물이 나온 뒤 차기 회담을 열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핵기술자들의 방북도 그런 후속 협의를 위한 활동의 하나다.

참가국들은 차기 6자 회담에서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 신고에 따른 경제, 정치안보적 지원에 대한 합의문서를 작성, `2.13 합의’에 버금가는 비핵화 이정표를 세울 계획이다.

이런 목표는 연내에 핵시설 불능화를 하겠다고 나선 북한의 적극적 태도에 비춰볼 때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북한을 방문했던 미국 국립핵연구소장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영변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에 대한 진지함을 느꼈다”며 방북소감을 밝힌 뒤 “연내 불능화를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며 불능화를 향한 중요한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헤커 박사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그간 개최된 여러 실무그룹회의에서 보여준 북한의 태도는 과거에 비해 훨씬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시설 불능화 작업은 송 장관이 언급한대로 `지금까지 밟아보지 못한 영역’이다.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라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 막 발을 내딛기 시작한 것이 핵기술팀의 방북이고 그 결과가 차기 6자 회담에서 큰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주요 기반이 될 것이라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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