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軍-民 유혈충돌…40년군정 종식되나

미얀마의 반정부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군사정부가 27일 불교사원을 급습해 승려 100여명을 체포했다.

미얀마 군경은 전날 시위에서도 200여명을 체포했으며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4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그 인파도 10만명을 넘어 서고 있다. 지난 88년 민주화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이다.

이번 사태는 미얀마 군사정부가 유류 가격을 천연가스는 5배, 경유는 2배로 올리면서 이에 항의하는 승려들의 시위로 촉발되었다. 시위는 점점 정치적 성격으로 변해 미얀마 군사정권 타도 구호가 등장해 민주화 시위로 나아갔다.

특히 가택 연금 중이며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집으로 시위 행렬이 향함으로써 군사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미얀마 상황에 대해 국제사회는 민주화 시위를 강력히 지지하는 분위기다.

미국은 라이스 국무장관의 발언을 통해 미얀마 군사정부의 야만성을 지적했고, EU도 즉각 유혈진압 반대 의사를 표하였다. 유엔은 미얀마 군사 정부의 유혈 진압이 진행되자 유엔 특사를 현지에 파견하고 미얀마로 하여금 특사의 입국을 허용할 것을 촉구하였다.

EU는 미얀마 군사 정부에 대한 추가 제재안 논의에 들어갔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마얀마 사태에 대한 대응책 논의에 움직임을 빨리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미얀마 사태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대(對) 미얀마 제재 결정 혹은 미얀마 군사 정부의 폭력진압과 관련한 유엔의 규탄 성명 발표 등에는 즉각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은 지난 1월 러시아와 함께 미얀마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이번 미얀마 사태는 군부독재의 무능과 폭압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터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1962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40년 넘게 군정을 계속해 오고 있다. 그러다 1988년 8월 8일 전국민적 민주주의 봉기가 발발했다.

당시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 민주화에 대한 희망이 커질 무렵 9월 18일 또 다른 군사 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발발, 시위대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다. 당시 약 한 달 사이에 2만 여명이 학살됐다는 보고가 나왔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총선거 실시를 발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자신들은 다시 군부대로 귀환하겠다고 약속했다. 1990년 5월 27일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대표로 이끌었던 버마민족민주동맹(NLD)이 82% 이상의 압승을 거두었다.

선거 결과를 UN에서도 인정했으나 군부세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선거에서 선출된 NLD 국회의원들과 NLD 정당원들,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학생들을 체포, 구금해버렸다.

이후 군사정권은 아웅산 수지 여사의 가택연금을 지속하는 등 과거의 탄압을 재연했다. 이후 NLD는 태국에 본부를 두고 주로 국외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 와중에 2003년 5월 30일, 아웅산 수지 여사를 포함한 민족민주동맹(NLD) 정당의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테러가 발생, 70여명이 살해되고 20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얀마군사정권(SPDC)은 대대적인 야당 탄압을 자행, 총 256명의 인사를 체포했는데 이 중 100여명은 아직도 감금 상태에 있다.

또한 전국의 NLD 사무소를 폐쇄하고 주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으며 아웅산 수지 여사를 다시 가택에 연금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진영은 이 사건을 군사정권이 조작, 사주한 ‘디페인학살만행’으로 규정,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왔다.

최근 다시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는 미얀마 국민들의 반정부 시위가 과연 그토록 갈망하던 민주주의를 불러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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