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핵실험으로 얼룩진 남북관계

올 해 남북관계는 북한이 7월 5일 동해로 쏘아 올린 미사일 7발로 크게 흔들리고 10월 9일 감행한 핵실험으로 요동쳤다.

상반기에는 경협 분야를 중심으로 당국 간 협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반면 하반기에는 미사일에 이은 핵실험 정국이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당국 관계가 급격히 냉각돼 극명한 대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 철도도로연결사업도 `핵겨울’을 맞았다.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남북간 교류 협력의 확대 발전은 물론 현상 유지조차도 쉽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인한 1년이었던 셈이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2005년 6월17일 당시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을 계기로 남북 간에 교류와 협력이 질적, 양적으로 팽창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4월 제18차 장관급회담에서 한강 하구에서 골재를 채취하고 단천을 민족공동자원개발 특구로 지정해 개발하자는 제안을 통해 북측과 공감대를 구축한데 이어 6월 제12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에서 골재 채취사업에 합의하기도 했다.

특히 6월 금강산에서 이뤄진 제14차 이산가족상봉에서는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인 납북자 김영남씨가 남쪽의 어머니와 상봉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이에 앞서 경의선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이 5월 13일 제12차 남북 철도도로연결 실무접촉을 통해 합의되면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획을 긋는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북측이 시험운행을 하루 앞둔 5월 24일 무기 연기하면서 무산됐다.

열차 운행을 위한 북측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남북관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6월 경협위에서 정부는 열차 시험운행을 8천만달러 어치의 대북 경공업 원자재 제공을 위한 조건으로 걸어 합의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는 듯 했지만 한 달 뒤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함에 따라 열차 운행은 요원한 일이 돼 버렸다.

연초부터 추진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방북을 위해 북측과 협의를 진행했지만 미사일 발사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중단됐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응으로 쌀 차관과 비료 제공을 유보하기로 했고 7월 11일부터 열린 제19차 장관급회담은 사흘 만에 얼굴을 붉힌 채 결렬되는 초유의 상황을 맞아야 했다.

쌀 차관 유보에 대한 북측의 불만은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전면 중단과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의 공사 중단 조치로 이어지면서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당국 간 회담은 올 스톱 상태에 들어갔다.

7월 중순 북한 지방에 내린 호우에 따라 우리 정부는 대한적십자사와 민간단체를 통해 수해 복구 물자 지원에 착수, 서서히 관계 복원을 모색했지만 10월 들어 북한이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됐다.

핵실험 강행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로 이어졌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의 미래를 위협했다. 결국 개성공단의 추가 분양은 중단됐고 한 때 월 4만명을 넘던 금강산관광객 숫자는 11월에는 1만명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이에 따라 올해 금강산 관광객은 1∼11월 23만여명 수준에 그치면서 지난 해의 29만여명에 못미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교역은 2년 연속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1∼10월 교역액이 11억6천932만 달러로, 2005년 연간 규모인 10억5천575만 달러를 웃돈 것이다.

이는 공단의 추가 분양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단계 본 단지에 입주할 예정이던 기업들이 속속 공장 건설에 착수하고 생산라인을 가동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됐다.

핵실험은 또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고 우리 사회의 대북 여론을 급격히 악화시키면서 대북 포용정책을 휘청이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12월18일부터 6자회담이 재개되는 것이 청신호가 되고 있지만 연말까지 남북관계의 급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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