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정상회담 어떤 논의하나

6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미국과 러시아 간 정상회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느냐 하는 문제는 두 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국 정상들은 이번 회담에서 양자 관계는 물론 주요 국제 안보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1) 후속 협정 = 오는 12월 시한 만료하는 START-1을 대체할 후속 협정이 이번 회담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미 양국 대표단은 세 차례 협상을 통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봤고 현재는 이번 회담에서 공개할 초안 작성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게이 루아브코프 외무차관은 1일 리아 노보스티와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기대 이상의 진전이 있다”면서 “START-1보다 훨씬 더 많은 감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러 양국은 2002년 두 나라 정상이 서명한 전략공격무기감축협정(SORT)에서 핵무기 수를 1천700∼2천200개 수준으로 줄이도록 합의했는데 이번 협상에서 SORT가 정한 것보다 핵무기를 더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는 전략무기를 START-1에 비해 몇 배 더 감축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핵탄두 수는 러시아와 미국이 2002년 서명한 SORT가 정한 것보다 더 감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 = MD 문제는 그동안 양국 사이를 갈라 놓은 화근(禍根) 중 하나였던 만큼 이번 회담에서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으려 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란 등 불량국가의 잠재적 미사일 위협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추진하는 동유럽 MD 계획이 자국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면서 반대해 왔다. 심지어 START-1 후속 협정 협상에도 이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다.

즉, 미국이 MD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덜어준다면 러시아도 핵무기 감축 협상에서 미국 측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MD 계획에 신중한 입장인데다 최근 미국 내에서 러시아와 협력하자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윌리엄 린 미 국방부 부장관은 지난달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MD 추진 여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안 중 하나로 러시아와의 협력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과 가까운 곳에 설치된 러시아의 레이더 기지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MD 문제는 이란 핵 프로그램과 함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에 무기를 공급해 온 러시아는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강화를 거부하고 있다.

앞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러시아가 이란의 위협에 대응하는 일을 도와줄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언급,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기간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한 핵 문제 = 북한 핵 문제는 양자 현안은 아니지만, 양국의 관심사 중 하나로 이번 회담에서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전인 지난 4월 1일 런던에서 만난 두 정상은 공동 성명에서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면서 북한의 로켓 발사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국은 로켓 발사 후 북한에 대한 제재를 두고 시각차를 보였다. 러시아는 오랜 동맹을 유지해 온 북한을 의식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가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에 반대했고 결국 이 때문에 결의안 대신 의장 성명만 채택됐다.

이후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는 지난 5월25일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중국과 함께 안보리의 추가제재에 찬성하는 등 강경 기조로 바뀐 상태다.

이런 변화는 북한 핵 도발이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고 미국과 함께 핵무기 비확산을 이끄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확산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회담이 끝나고 양국 정상은 북한의 대화 복귀와 도발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통상 현안 = 러시아는 16년 넘게 WTO 가입을 희망해 오고 있지만 유럽연합(EU), 미국과의 통상 마찰로 아직 그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06년 러시아의 WTO 가입에 동의하긴 했지만, 러시아에 지적 재산권 보호 등 WTO 규정에 맞는 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작년 8월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데 대해 WTO 가입 저지 카드를 들고 나와 협상이 차질을 빚게 했다.

또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잭슨 배닉 수정안’의 철폐 여부도 양국 통상 관계 개선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잭슨 배닉 수정안’은 유대인 및 종교적 소수자들의 자유 이민을 보장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옛 소련이나 여타 계획경제 국가들과 정상적인 무역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러시아는 1994년부터 이 조치에 응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미 의원들은 러시아와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를 맺기 전에 러시아가 WTO 가입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인플루엔자 A[H1N1](신종플루) 바이러스 발병 이후 미국 몇 개 주에서 생산되는 육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금수 조치 해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기타 의제들 = 지난해 8월 전쟁 이후 휴전이 선언됐지만,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그루지야 내 두 자치공화국 문제도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압하지야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야에서 유엔 평화유지군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단이 각각 철수하면서 이 지역 안보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지난달 29일부터 카프카스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한 것을 미국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그루지야 전쟁이 양국 관계를 소원하게 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에서 그루지야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합의를 이뤄내야만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러시아는 이번 회담에서 그루지야 전쟁 이후 나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안한 `새 유럽안보조약’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당부하면서 이 문제를 논의키 위한 유럽 정상회담 개최를 재차 제의할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 아프가니스탄 테러나 중동 평화 협상, 테러 척결, 기후변화, 해적 소탕 문제도 거론될 수 있지만, 과거처럼 미국 측에서 러시아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문제 삼아 회담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