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1968.1.23)

▲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336일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출처:조선일보>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중 북한 해군 함정에 의해 나포됐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 해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했다. 미 해군 함정이 공해 상에서 납치되기는 미 해군사상 10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푸에블로호는 1월 23일 정오경 1척의 북한 초계정으로부터 첫 공격을 받았으며 14:32에는 “엔진이 모두 꺼졌으며 무전연락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원산항으로 끌려간다”고 최종보고를 보내 왔다. 이에 대하여 국무성은 푸에블로호와 승무원들을 즉각 석방하도록 소련을 통해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고 하였다. 푸에블로호는 경화물선을 개조한 해군 정보수집 보조함으로서 무게 906톤, 길이 54m, 폭 10m, 속도 12.2노트이고, 승선인원은 장교 6명, 사병 75명, 민간인 2명 총 83명이었다.

한편 이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항해중인 핵(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3척의 구축함을 진로를 변경시켜 원산만 부근에서 대기토록 하였으며, 25일에는 해·공군의 예비역 14,000여명에게 긴급 동원령을 내리고, 전투기를 비롯한 항공기 372대에 대한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했으며, 오산과 군산기지에 2개 전투기대대를 급파하는 등 군사적 조치를 취해 나갔다. 28일에는 추가로 2척의 항공모함과 구축함 1척 및 6척의 잠수함을 동해로 이동시킴으로써 한반도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30여차례의 비밀회담 끝에 납치된 승무원들이 325일 만인 1968년 12월 23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당시 미국은 반전(反戰) 여론 때문에 월남전에서 철수를 고려하고 있는 시기여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상태를 원치 않았으므로 상당한 양보를 하면서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한편 푸에블로호 사건이 일어난 지 31년이 지난 1999년 북한은 원산항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김정일 지시에 의해 1999년 10월 대동강 ‘충성의 다리’ 근처로 옮겨 반미(反美)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The DailyNK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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