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북 중유제공방침..”금기 또 하나 깨졌다”

미국의 대북 중유제공 방침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북정책 전환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 행정부는 지난 11일, 북한의 2.13 합의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유 5만t을 제공하기 위해 예산 2천500만달러를 사용키로 하고 의회 측에 협의를 요청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예산 협의 요청은 북한에 중유를 제공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는 미국내 법률의 적용을 유보함으로써 중유 제공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반영한 또 하나의 상징적 조처”라며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세워둔 ‘금기’들이 하나둘 없어져 가는 과정인 듯 하다”고 말했다.

미측은 그간 대북 중유 제공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심지어 불능화 단계까지의 비핵화 이행대가로 중유 100만t 상당의 대북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한 2.13 합의가 도출된 후에도 북한에 중유 대신 소형 발전기나 인도적 지원을 하는 방안을 우선 고려했었다.

북한이 중유를 최우선적으로 희망하는 상황에서 미측이 중유제공을 주저한 것과 관련, 외교가는 미국 국내법적 제약과 정서적 거부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현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짐’으로 생각하는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가 북한의 핵동결 대가로 매년 중유 50만t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는 점이 중유제공에 대한 미측 거부감의 배경이라는 얘기다.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보유 의혹이 불거졌을때 미측이 대북 중유 제공을 중단함으로써 제네바 합의를 무력화시켰던 만큼 미국으로서는 다시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는데 대한 심정적 부담감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북한이 올 7월 초기단계 핵시설 폐쇄조치를 이행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7월 북한의 핵시설 폐쇄를 즈음해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서 “미국의 지원 품목이 중유가 될지, 다른 품목이 될지는 기술적인 문제이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다”며 기류 변화를 시사했다.

거기에 더해 북한이 이달 초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의때 연내 불능화 이행 및 성실한 신고에 합의하자 미국 행정부내 기류는 ‘이쯤이면 중유를 제공해도 괜찮다’는 쪽으로 굳어진 듯 보인다.

이제 관심은 현단계에서 미국이 터부시하는 또 하나의 이슈인 경수로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9.19 공동성명 채택 후 ‘핵폐기 이전에 경수로 제공 논의를 할 수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미국이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이 경수로를 본격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또 한번 유연성을 보일지 주목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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