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北동결자산’ 테러국 해제후 풀릴까?

북한이 오는 26일 핵 프로그램 신고서를 제출할 경우 미국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절차에 착수하고 적성국교역법 적용도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북한 동결자산 처리문제가 미북 간 새로운 논란거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조치가 취해진 이후 북한은 미국 내 동결자산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미국 내에 대북 채권을 가진 개인이나 기업은 자산동결 해제를 막으며 북한의 선(先) 채무이행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5월1일자로 보완한 ‘테러희생자들의 테러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의 미국 내 동결자산은 3천170만(320억 원 상당)달러다.

일각에선 북한이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되고, 적성국교역금지법 적용대상에서 해제되면 북한이 이를 근거로 미국 내 북한 자산의 동결해제를 요구하며 재산권 행사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북한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북한으로선 테러지원국이라는 오명을 씻음과 동시에 ‘3천170만 달러’라는 현금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미국 내 북한 동결자산 해제 문제는 별개의 문제로 간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미국 내 북한 자산이 북한의 테러지원 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동결됐다고 하더라도 동결을 해제하는 문제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는 또 다른 문제로 별도의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또 부시 행정부가 임기 내 외교적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핵폐기 협상을 서두르고는 있지만,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의 의회 내 반발도 고려해야 하고 검증 기간도 긴만큼 섣불리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정확한 액수는 모르지만 미국 내에는 북한에 채권을 갖고 있는 개인이나 기업도 있어 북한 동결자산 해제문제는 이것과 맞물려 있다”면서 “북한에 채권을 가진 미국 내 개인이나 기업이 이를 회수하려는 노력을 할 것인 만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 이름이 빠진다고 곧바로 이 자산이 북한 손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북한도 미국 내에 자신들의 채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때문에 북한은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한때 동결자산 해제를 요구한 바는 있지만 최근 몇 년 간은 이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작년 10월 하순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참석, 미국에 동결돼 있는 북한 자산들은 “분쟁상태에 있다”면서 “그 중 어느 것도 북한에 반환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북미 간 논란이 됐던 쟁점 가운데 상당수가 정치적 합의에 의해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이후 미국 내 북한 동결자산 처리문제도 정치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시점에 있어서는 미국 대선이 임박했다는 것과 북핵 검증 및 3단계 협상의 진전 가능성이 낮아 올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적성국교역법 해제 절차에 따라 동결자산을 풀어달라고 할 것”이라며 “BDA(방코델타아시아)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만 액수가 크지 않기 때문에 융통성 있게 해결될 가능성이 일단 커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김 교수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절차와 북한의 핵 신고서에 대한 검증 등의 기간을 고려할 때 그 문제가 일사천리, 빠른 시일 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 행정부는 북핵 3단계 폐기 협상이 진행될 때 이 같은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궁극적으로 동결자금 해제를 위한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실이지만 동결자산에 대한 각각의 원인이 있는 만큼 그 문제들이 선행돼야 한다”면서도, 다만 “미국 내 북한 자금의 동결이 ‘정치적’ 이유도 고려됐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 행정부는 현재의 북핵협상에 대한 미국 내 반발 등을 고려해 최대한 ‘쇼’를 통해 외교적 성과인 양 분위기를 극대화 한 후 단계적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