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억류자 석방 카드 만지작거리는 김정은…속셈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르고트 발스트룀 스웨덴 외교장관은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회담에서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석방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5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측에 미국인 인질 석방 카드를 예고한 셈이다.

북한은 다른 나라와 협상을 해야 할 때 외국인 억류자 석방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형적인 인질 외교로, 북한이 이번에도 유사한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례로 2017년에는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북한 외교관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수사를 받자 북한 당국은 자국 내 말레이시아인들을 전원 억류해 인질로 삼았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억류한 자국민을 송환하는 조건으로 김정남의 시신을 북한에 넘겼고, 시신을 인수하자 북한은 말레이시아인들을 풀어줬다.

현재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은 3명이다. 모두 한국계 미국인으로, 간첩 행위 혐의로 체포됐다. 대체로 외부 정보 유입 및 내부 정보 유출 움직임에 북한은 이 같은 죄목으로 구금을 감행했다.

일단 북한과 중국에서 선교 및 무역활동을 했던 김동철(62) 씨는 군사자료가 들어있는 USB를 넘겨받았다는 이유로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시에서 체포됐다. 이후 2016년 4월 간첩 행위 혐의로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회계학 초빙교수로 일하던 김상덕(59‧영어명 토니 김) 씨는 2017년 4월 평양 순안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 ‘반공화국 적대혐의죄’로 체포됐다. 당시 북한 매체는 “미국 공민 김상덕이 체류 기간 우리 국가를 전복하려는 적대적인 범죄행위를 해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체포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역시 평양과학기술대학에서 농업지도 강사로 일하던 김학송(55) 씨는 같은 해 5월 평양역에서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열차를 타려다 평양역에서 체포됐다. 겉으로는 ‘반공화국 적대혐의’를 내세웠으나 북한 주민을 상대로 한 선교 활동이 체포 이유였다.

북한에 억류 중인 김정욱 선교사. 지난 2014년 2월 기자회견 모습. / 사진=연합

현재 북한에는 대한민국 국적자도 6명 억류돼 있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대부분은 북중 국경지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체포됐다. 김정욱(55) 씨는 2013년 10월에 밀입북 혐의로 체포됐으나 이후에 북한 당국은 김 씨가 “국가정보원 간첩으로 스파이 활동을 주선 하는 등 반국가 범죄 혐의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현재 사형 다음으로 중형인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감금돼 있다.

선교사 김국기(64) 씨와 최춘길(59) 씨는 각각 2014년 10월과 2014년 12월에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현재까지 억류돼 있다. 북한은 김 씨와 최 씨의 억류 이유에 대해 “국가정보원 간첩으로 정탐 및 모략행위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적자 6명 중 나머지 3명은 탈북민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외국인 억류 이유를 보면 명목은 북한의 체제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북한 주민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거나 북한 고아를 돕는 일 등을 적대행위로 보고 이들을 체포했다.

북한은 이렇게 억류한 외국인들을 이들의 자국과 협상할 때, 또는 국제적인 외교 마찰을 무마하기 위해 이용해왔다. 테러집단이나 범죄조직에서나 하는 인질극을 북한은 수십 년째 계속하고 있는 것.

북한은 2009년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를 취재하던 미국 여기자 로라 링과 유나 리를 억류했다. 북한은 두 여기자를 150일 가까이 가둬놨고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협상한 후 두 여기자는 풀려났다. 당시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었고 국제적 고립에 직면한 북한이 미국과 직접 협상하기 위해 외국인 인질을 이용한 것이었다.

2012년 재미동포 케네스 배 씨가 선교활동을 하던 중 공화국 전복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받았다. 케네스 배는 2014년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 국장이 북한에 특사로 파견된 후 풀려났다. 이때도 북한은 미국과 대화 테이블에 앉기 위해 외국인 인질을 지렛대로 삼았다.

또한 지난해 6월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이후 북한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진 상태라는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 미국인 억류자 석방 카드를 미국 내 적대 여론을 잠재우는 데 활용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20일 데일리NK에 “이번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비핵화이기 때문에 미국인 억류자 석방은 비핵화 협상의 카드가 될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신 교수는 “미국으로서는 시민권자에 대한 인권 문제이기 때문에 미국인 억류자 석방은 매력적인 카드라고 볼 수 있다”며 “어렵게 마련된 북미 대화에 북한이 조심스럽게 임하고 있다는 뜻이고, 대화를 시작하기 회담 분위기를 띄우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