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략과 선택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북핵 문제가 13일 극적으로 타결된 데 대해 무척 고무된 분위기다.

제임스 켈리 전 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을 계기로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이 불거진 이후 4년4개월, 베이징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17개월 만에 갈지자를 거듭하던 북핵 문제가 일단락된데 따른 안도감 때문이다.

이라크전에다 이란 핵문제까지 겹친 상황에서 북핵 문제까지 파국으로 치달았을 경우를 감안하면 부시 행정부로선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때문인지 미국은 이번 합의가 지난 1994년 빌 클린턴 정부 당시 북한 핵동결을 전제로 체결한 제네바협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북한의 의도에 질질 끌려가는 외교가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외교방식을 통해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이렇다할 외교업적 하나 없는 상황에서 최소한 낙제점은 면할 수 있게 됐다는 자평도 나온다.

워싱턴 정가에선 “미국이 9.11 테러 이후 가장 중시해온 핵문제가 가닥을 잡은 만큼 이제 북미관계가 순항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북핵의 완전타결까진 가야할 길이 먼 만큼 성급한 낙관은 금물”이라는 신중론이 교차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악화일로로 치닫던 북미관계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가게 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 ‘행동 대 행동’ 원칙 = 미국은 앞으로 북핵의 완전한 폐기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그간 북한의 전유물이었던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등가성과 동시이행이라는 두 원칙을 금과옥조삼아 북한의 초기 이행조치 수준과 내용에 맞춰 중유 등 에너지 지원의 상응조치를 취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초기이행조치 대상으로 명시된 영변 5㎿ 원자로 등 5개 핵 관련 시설의 ▲동결 ▲폐쇄 및 봉인 ▲불능화 ▲해체 등 단계별 이행조치에 따라 ‘중유 50만t’에다 ‘플러스 알파’를 보장하되 향후 구성될 에너지.경제지원 실무회의에서 본격 논의하겠다는 게 미국측 구상이다.

◇ 방코델타아시아(BDA) 北 동결계좌 해법은 = 북미간 실무그룹회의에서 다뤄나갈 내용들이 많지만 일단은 마카오의 BDA 은행에 동결된 북한자금 2400만 달러 중 일부를 선별해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12일 “미국이 지난달 북미 베를린 회동 후 대북 금융제재 일부를 해제하겠다는 뜻을 한일 양국 정부에 전했고, 해제될 액수는 1천100만달러이며 이는 위법성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1일 북미가 베를린 회담에서 BDA 문제를 30일 이내에 해제하고, 60일내에 초기이행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고위소식통도 이날 “액수는 잘 모르지만 미국이 BDA 조사를 곧 종결짓고 북한의 핵폐기를 견인하기 위한 긍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아사히도 “미국은 가급적 이른 시기에 조사 결과를 마카오 당국에 전달해 처리를 맡기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문제도 북한의 핵폐기 성의 수준에 따라 순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위 관계자는 “북미 금융실무회담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일각에선 BDA 문제 추가 해결을 위해 향후 고위급 방문이나 연락사무소 개설 등의 조치가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BDA 문제가 탄력을 받지 못할 경우 북핵문제가 다시 난관에 봉착하는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대북정책 조정관 지명과 역할 = 미국은 조만간 대북정책 조정관을 임명, 북핵 문제를 완전히 마무리 짓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관은 이날 “부시 대통령이 북핵 타결을 계기로 대북 조정관을 조만간 임명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누구를 임명할 것인가를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당초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업무의 일관성과 전문성을 감안, 유력했으나 북핵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한층 영향력있는 고위급 인사가 맡는게 바람직하다는 의회요구에 따라 국가정보국장을 지낸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이 거론되고 있다.

힐이 되건, 네그로폰테가 되건 간에 부시 대통령은 대북 조정관에게 최대한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 ‘평화체제 구축’ 요원 = 미국은 아직 분명한 원칙과 방침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북핵 폐기의 정도에 따라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평화체제 포럼을 본격 발족, 한반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협의에 착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일단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 당사국이 참여하되 기존 6자회담의 틀 밖에서 별도로 가동될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과 미국은 양국 관계정상화 실무그룹이 가동되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에 따른 일방조치 철폐 문제를 본격 거론한다는데 원칙적인 의견접근이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핵폐기를 놓고 곳곳에 뇌관이 묻혀있는 상황인 만큼 평화체제 구축까지는 요원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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