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對소련 냉전전략과 국보법 제7조의 경우

조지 케난(George F. Kennan)은 미국의 對소련 냉전전략을 시작한 인물이다.

그는 사회주의 제국과의 냉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네가지 주요 과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튼튼한 안보, 강한 경제, 시민 자유의 보호, 사회주의에 대한 사상전의 승리가 그것이다. 이 네가지 문제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안보와 시민 자유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다.

안보와 시민 자유의 조화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군사적 대치 상태를 겪고 있는 국가라면 어느 곳이나 필요한 문제다. 역사적으로 많은 독재권력이 안보를 명분으로 자유를 억압했고, 그 결과 몰락의 길을 걸었다. 북한의 김정일 독재는 미국의 안보 위협을 핑계로 이 시대 가장 극악한 억압 체제를 만들었다. 결국 수 백만의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 참상이 벌어졌다.

물론 불가피하게 시민적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시(戰時)가 바로 그렇다. 전쟁 때문에 자국민이 죽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회, 시위,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같은 열전(熱戰)이 아니라 현재의 남북관계처럼 장기 대치 상태가 몇 십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전시처럼 기본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여기서 미묘한 점은 장기적 군사대치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자유를 어디서부터 제한하고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우리는 이 문제에서 미국의 사례를 참조할 수 있다.

장기 대치 시기는 시민자유 보장, 폭력은 제한

미국의 사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전시가 아닌 장기 대치 시기에는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되 폭력을 동반한 행동의 자유는 제한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미국에서는 안보 대치 상황에서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법들이 제정·운영되어 왔다. 방첩법(Espionage Act), 치안법(Sedition Act), 스미스 법(Smith Act) 등이 그것이다. 이 법들은 대체적으로 미국 전시 기간에 제정되었다. 전시 중에는 자유를 제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치안법은 방첩법(1917년 제정)을 개정하여 1차 대전 기간인 1918년에 통과된 법이다. 대표적인 사건중에 Eugene Debbs 사건과 Schenck 사건이 있다. Eugene Debbs는 미국 사회당 당수였고, Schenck는 사회당 비서였다. 둘 다 세계 제 1차 대전에 반대하여 미국인들이 군대 징집에 응해서는 안된다는 선동을 하고 다녔다. 이에 미국 대법원은 그들의 행동이 평상시에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할 수 있어도 전시에는 표현의 자유 조항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며 둘 다 처벌했다.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법으로 1940년에 통과된 미국의 스미스 법이 있다. 이 법은 미국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할 필요성 등을 가르치거나 고무하는 단체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처벌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 스미스 법에 의한 판례로 두 가지 상충되는 판결이 있다. 하나는 51년 유진 데니스 (Eugene Dennis) 건이고 다른 하나는 57년 Yates 건이다.

유진 데니스는 미국 공산당 총비서로서 스미스 법에 의해 미국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하려 한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구 공산당 동료들이 데니스가 폭력을 통한 정부 전복을 옹호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유죄 인정을 받았다.

폭력 행동의 자유는 No, 학습, 토론 자유는 Yes

그런데 Yates건은 유진 데니스가 당수로 있었던 14명의 미국 공산당원들에 대한 판결인데 유진 데니스 건과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이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폭력 사용을 선동(incitement)하는 것과 폭력 혁명 개념을 학습(education of concept)하는 것을 명백히 구분한다. 즉 폭력 사용을 선동하고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은 처벌되어야 하지만 단지 마르크스, 레닌 등 폭력혁명 개념을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Yates건은 전원 무죄 판결이 나온다.

위의 미국 판례를 보면 표현의 자유와 공공 질서 보장은 항상 긴장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현대로 올수록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흔적이 다분히 보인다.

사회당 당수였던 유진 데브스나 공산당 총비서였던 유진 데니스는 한국으로 치면 박헌영이나 조봉암 정도 되는 사람들이다. 사실 유진 데브스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6%나 되는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조봉암은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결국 박헌영도 김일성의 손에 죽었다. 아마 박헌영이 남한에 있었서도 살아 남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유진 데브스는 10년형을 받았고 유진 데니스는 5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유진 데니스는 소련의 간첩 행위를 한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미국 공산당원 14명이 연루된 Yates 건은 한국의 80년대 수많이 존재했던 마르크스, 레닌, 주체사상 학습 서클과 유사한 사건이다. 57년 경의 미국은 80년대 한국보다 훨씬 자유스러웠음이 틀림없다. 만약 Yates건이 80년대 한국에서 재판 받았더라면 최소한 7년 이상은 선고받았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상의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국 판례에서 보듯이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할 것인가의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고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다. 당시 사회가 전시 중인가, 아닌가, 다시 말해 어느 정도 안보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기준이 엄격해지거나 완화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7조, 시민 자유 확대 방향에서 개정돼야

한국에서도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오래된 논쟁이 있다. 가장 핵심 논쟁 지점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는 국가보안법 제 7조(반국가단체 찬양·고무 및 이적표현물 소지·반포 등)이다. 이 7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은 현재 한국 사회의 안보 위협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다른 듯하다.

아직도 북한의 남침 및 적화통일 위협이 아주 크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7조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에 반해 북한의 남침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적화 통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7조 정도는 폐지해도 괜찮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북한의 위협을 여전히 크게 보고 있고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그 위협을 크게 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더욱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북한의 국력 격차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일수록 더 많은 자유를 원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Yates 사건에 대한 미국 대법원 판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폭력 행동에 대한 선동”은 처벌하더라도 “단순 학습”은 표현의 자유 범위에서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국가보안법도 7조를 없애고 개정 입법하거나 아니면 대체 입법을 전향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냉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의 전략가 조지 케난의 말처럼 장기전에서 더 강력한 안보는 사회 내부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안보를 핑계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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