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근거 있나

미국이 북한과 비핵화 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방한한 미국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과 진지한 움직임들을 준비한다면 미국도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이는 비핵화를 위한 회담은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가 선행돼야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이지만 대화를 전제로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적극적인 신호이기도 하다. 그동안 북한의 대화 요구에 꿈쩍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라진 태도이다.


여기에 남·북·미가 참여하는 비핵화를 위한 3자회담까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6자회담의 예비회담 성격을 갖는 3자회담을 제기한 배경에는 어떤 형태로든 조속한 비핵화 대화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천안함, 연평도 문제와 남북간 비핵화 대화가 우선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해왔다. 그러나 남북대화 전망이 밝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개입하는 방안도 적극 타진해 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대북 식량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소식도 있다. 북한이 최근 북-미 간 뉴욕채널을 통해 2009년 중단된 연간 50만t의 식량 지원을 재개해 줄 것을 미국 정부에 강하게 요구했고, 이를 긍정 검토한 미국이 한국에 지원에 대한 문의를 해왔다고 한다.


북한이 식량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에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긍정 검토 배경에는 북한이 미국에 교감을 사기 위한 모종의 발언을 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미국의 행보에 대한 우리 외교부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스타인버그 부장관과 우리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동 직후 외교부 핵심 당국자는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고 말했다. 천안함, 연평도에 대한 조치와 비핵화 대화를 분리할 의향을 내비친 것이다.
 
통일부 장관이 다음날 이를 부인하고 청와대가 교통정리에 나서 천안함·연평도 사과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어야 남북관계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외교부가 대화 재개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 재개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점은 십분 이해할 만 하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저장고를 늘리는 과정을 수수방관하기 어렵고, 또한 북한이 핵탄두를 탑재한 ICBM을 개발해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에 두려고 하는 점도 부담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북한의 사과와 선 비핵화 조치라는 대화의 전제가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제재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돼야 한다.


북한은 위기를 고조시켜 놓고 상대방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여 각종 지원을 뜯어내는 과거의 관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를 바꿔놓지 않고서는 대화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의 북한을 상대해온 한미의 경험이다. 


천안함을 폭침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해 놓고 ‘과거를 잊고 대화하자’는 북한의 태도에서 어떠한 반성의 기미가 읽혀지는지 묻고 싶다. 과거 6자회담에서 우라늄 농축시설이 없다고 해놓고 버젓이 관련 시설을 공개한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무엇을 얻어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반성, 반성이 없다면 뼈저린 고통으로 입장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 먼저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6자회담 수석대표가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한 것도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일관되게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비핵화 대화 필요성을 내세워 북한과 접촉을 추진한다면 우리 정부의 대북협상력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를 논의할 남북 군사예비회담을 앞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남북 접촉이 재개되는 현 시기에 한미가 북한에 엇박자 신호를 보내서는 곤란하다. 미국의 협조와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하나된 목소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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