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조총련을 만듭시다”

▲ 재일조선인총연합 50주년 기념식 ⓒ로이터

지난 15년이란 세월 속에서 북한을 다니면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웬만한 것은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머리 속을 아무리 뒤져봐도 얼굴이 기억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이 사람이다.

평양에 머무를 때다. 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참사로 있는 로철수가 저녁을 먹지 말고 자기와 같이 단고기(개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에 따라 나섰다. 어딘지도 모르는 어둑한 곳으로 한참 가더니 외딴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안내를 한다.

옛날식 한옥이다. 안방 대청마루에 여인네가 치마저고리를 곱게 입고 맞이한다. 로철수는 나를 방으로 안내만 하고 나간다. 아랫목에 앉아있던 내 또래의 건장한 남자가 일어나면서 “찬구 선생 반갑습니다”고 인사 한다. 이내 술상과 음식이 들어오고 단 둘이서 마주 앉았다.

분위기가 좀 으슥하다. 자신을 중앙당 고위간부라고만 밝히고 이름은 말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 특별히 소개할 필요도 없었다. 우선 술부터 몇 잔이 오고 갔다. 푸짐한 요리가 나오고 이내 우리는 친해졌다.

나를 별도로 대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 동안 조선(북한)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조국을 위해 열심히 사업을 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으로 지도자 동지께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걸핏하면 지도자 동지나 수령님의 배려라고 습관처럼 말했다.

“미 제국주의 밑에 살면서 얼마나 고생하는가”

그는 “미주지역에서 고생하고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고 싶다”며 “동포들에게 조국이 무엇을 도와 줘야 하는지 알고도 싶고, 미주지역 동포들이 조국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이어 “미 제국주의 나라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사시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무슨 꿍꿍이 공작을 하려고, 하필이면 나를 선택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표정을 읽은 듯이 “긴장하지 마시오. 그저 동포들이 몇 명이나 어떻게 사는지 생활수준은 어느 정도인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그는 해방 전 수령님의 항일 빨치산 시절부터 이후 조선해방전쟁(6.25 전쟁)까지, 그리고 조국건설 사업과정에서 재일 동포에게 조국을 알리기 위해 교육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쳤다는 것까지 조선의 역사에 대해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마지막에는 미주지역에 재미 조총련(조선인총연합)을 조직해 조국을 좀 더 조직적으로 도와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에게 타진해 보는 것이었다. 애초 미국에 ‘조총련 조직’ 같은 것을 만들자는 의견을 들어 보려고 나를 따로 불러 식사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람 잘못 봤수다’고 외쳤다. 미국에서는 일본처럼 조총련 조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현재 미국에 사는 교포 전부가 남한에서 살다가 이민 간 동포들이다. 그리고 요새는 가난하고 못 살아서 미국으로 간 것이 아니라, 대개는 남한보다 더 넓고 큰 나라에 가서 아이들 공부도 훌륭하게 가르치려고 이민을 간다고 말했다.

도대체 뭘 모르는 사람들…

미국 정부가 활동을 금지할 것은 당연지사. 일본에 사는 조총련 동포들은 국적이 북한이고 북한에서 관리해왔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미국에서 사는 동포 대부분이 한국국적이기 때문에 우선 설득력이 없어 조직이 불가능하다.

만일 북한에서 우리 미주 교포들에게 ‘사상적 협조’를 강요한다면 북한 방문을 포기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일부 친북계 미주동포들도 조총련 조직에는 반대할 것이다. 이들도 단순히 북한을 찬양한다고 해서 남한에는 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친북이 아닌 교포들에게는 상식적으로 불가능 하다.

그러니 서둘지 말고 이렇게라도 공화국을 방문하는 동포들과 잘 화합하여 공화국 경제발전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두고, 교포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사업진출에 적극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잘 협조 해 주는 것만이 현재로서는 최선일 거라고 강조했다. 사상적 조직보다도 경제적 협력조직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해 줬다.

내 입장이 이렇듯 확고하자 그는 이제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잘 알겠다. 참고 하겠다”고만 말했다. 다시 술판이 벌어졌다.

중앙당 고급 간부라는 사람이 현실 파악도 전혀 못하는 것이 한심해 보였다. 이제 막 문을 열고 해외교포를 선별해가면서 받아들인 지가 몇 년이나 됐다고, 조급하게 조총련 조직부터 공작을 하겠다고 행동하니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가외교가 이 수준이니, 나라가 정상적으로 갈 턱이 없다.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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