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힌 남북경협…北 개혁 의지없인 ‘신기루’

남북관계 시계가 15년 이전으로 되돌려 졌다. 29일 오후 개성공단에 마지막 남아있던 우리 인원 50여 명이 귀환하게 되면 1998년 금강산관광을 시작으로 확대돼 온 남북교류협력사업이 완전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가 처음 출항할 당시만 해도 남북 간 화해협력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됐고, 2003년 개성공단 조성 첫 삽을 뜰 때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견인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확산됐다.


북한도 2002년 기업 경영자율권 확대하는 내용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실시했고, 나진선봉경제특구(1991년)에 이어 2002년 9월 신의주를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해 마치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돌입한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나 7·1조치는 2005년 백지화돼 이전 상태로 회귀했고, 특구 등도 ‘모기장식’ 개방 방식으로 철저한 주민통제를 우선했다. 개성공단 중단 역시 북한이 ‘최고 존엄 모독’이라는 정치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내부 ‘한국 동경 현상’ 확산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남북 교류협력 완전 중단까지는 여러 차례 큰 파고가 있었다.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피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관광사업이 중단됐고, 2009년 3월에는 개성공단 현대아산 관계자 한 명이 탈북책동과 체제 비난 혐의로 체포돼 억류 136일 만에 풀려나는 일이 있었다.


2010년 3월에는 천안함 폭침 사건에 따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류협력이 중단되는 5·24대북조치가 발표됐다. 이외에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반발해 상주체류인원 제한과 출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시행되기도 했고, 관광중단을 빌미로 남측 재산을 몰수·동결하는 조치도 있었다.


북한은 교류협력 사업을 한반도 긴장고조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측면이 있었다. 역대 정부가 우리 국민의 생명·재산 안전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북한은 교류협력 사업을 ‘남한에 베푸는 시혜’로 간주해 남북관계 고비 때마다 한반도의 긴장지수를 조절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또 애초 ‘모기장식’의 개혁개방 한계에 대한 지적도 지속돼 왔던 문제다. 남한의 지원과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촉매제’로 여기고 있는 북한은 언제든 교류협력 사업의 문을 닫을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 


남북 교류협력에는 남북 간 ‘상호이익’이라는 경제적 이유가 있었지만, 밑바탕에는 상호 신뢰증진, 안정적인 북한 관리,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 당위성 확산, 나아가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견인하는 발판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고, 막대한 세금 투여도 이를 위한 기회비용으로 여겼다.


하지만 현 개성공단 중단 사태로 더 이상 남북경협 확대가 북한의 시장경제 체제 경험, 개혁개방 유도라는 주장은 ‘신기루’라는 평가에 힘이 실리게 됐다. 남북경협의 완전히 중단됨에 따라 북한 체제의 실체를 인식한 대북정책이 새롭게 강구돼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는 것이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데일리NK에 “지난 진보성향 보수성향의 정부에서는 북한의 변화를 목표로 때론 포용정책을, 때론 압박정책을 폈지만, 결국 모두 성공 못 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포용정책에서는 상대의 개혁개방 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북한에는 제대로 된 개혁개방 의지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어 “남북 간 대치 상태에서 개혁개방 유도라는 것은 ‘불가능’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점도 우리가 얻게 된 교훈이다”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한 축은 근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개혁개방을 추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민주화, 정보화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