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 북한 反체제 인사 되어야 한다”

“자유 국가에서 욕도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오? 썩어빠지고 독재나 일삼는 정부며 늙은 독재자를 빼놓고 불쌍하고 힘없는 문인들 험담이나 해서 쓰겠어.”


1950년대 말, 서울 명동의 어느 한 술집에서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참여시인 김수영(1921~1968)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온갖 금기와 허위의식에 대해 ‘침’을 뱉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과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도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침을 뱉으라고 일갈하는 김수영을 피해갈 순 없었다.


이후 1970~80년대 한국 문단은 김수영의 뜻대로 군사독재정권 폭압에 대항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학계는 민주적인 절차와 원칙에 의해 국민이 선택한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침’을 뱉으면서도 북한 김정은 일족(一族)의 폭압성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소위 진보라며 북한인권 문제를 금기시했던 한국 문단에서 “우리 문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저(북한) 체제의 얼굴에 펜으로 ‘침’을 뱉는 것이다”라는 뜻밖에 낭보(朗報)가 들려왔다. 지난 1일 한 대학교에서 열린 ‘탈북 문학 세미나 및 남북 문인 시낭송회’에서다.


진보라 자칭하는 세력이 판을 치고 있는 한국 문단에 그동안 금기시됐던 ‘북한문제’에 목소리를 낸 주인공은 바로 문학평론가인 방민호(사진) 서울대 교수. 방 교수는 ‘문학인 북한인권 선언’의 초안을 발표하며 북한문제에 침묵하던 문학계에 경종(警鐘)을 울렸다. 


북한문제를 거론하면 문단에서 소위 ‘보수골통’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방 교수는 “북한을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라면 북한의 진상을 똑똑히 보고 북한체제의 모순을 알려야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김수영 시인이 ‘시여, 침을 뱉어라'(믿음사·1975)를 통해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不穩)하다라며 침묵하는 문학계를 일깨웠듯이 방 교수의 이 ‘외로운 외침’도 북한인권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침묵하는 한국 문학계를 깨울 수 있을까.



방 교수는 “문학인은 우리 사회에 무엇이 잘못되고 결핍되어 있는지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말하고 쓰는 것이 중요한 임무”라며 “문학인은 북한 반체제 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들과 문학인이 북한인권을 위해 하는 일은 방법이나 위상이 다를 수 있다”면서 “정치인들은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 김정은 정권과 타협하거나 손을 잡는 등의 전략전술을 취할 수 있지만 문학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북한인권 문제에 침묵하는 한국 문단을 질책했다.


그러면서 방 교수는 “문학은 정치처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정치가 할 수 없는 심원(心源)한 영향력이 있다”며 “진실된 말과 글로 이루어진 문학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방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8일 녹음이 우거진 서울대 교정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방민호 서울대 교수 인터뷰 전문]


-1985년 ‘민정당사 점거 농성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대 2학년에 재학 당시 학생운동에 투철하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권유를 받고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참여했다. 민주정의당의 전두환 정권은 간접선거 방식으로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민주주의 측면에서 정통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과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참가하게 됐다.”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84, 85년 내가 대학 다닐 때부터 90년대 초까지 학생운동이 급진화되었고 북한체제를 평가하면서 분화됐다. 한때 나도 급진적인 민주주의 입장을 취한 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북한체제가 비민주적인 체제라고 생각했다. 급진적인 민주주의도 민주주의를 완전하게 실현하고자 한 것이었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비민주주의적 모습에 대해서는 더욱 비판적이고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문학인들 특히 진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왜 북한인권 문제를 금기시하고 있다고 보나.


“진보와 보수에 대한 경직된 사고가 북한에 대한 진실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표방하니까 진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는 말로만 사회주의일 뿐 극단적인 형태의 정치·경제적 독점 체제이다.


20세기가 끝난 이래 진보와 보수는 무엇이 인간세계를 참되게 하느냐는 고민 속에서 변화를 더 존중하는 것이 진보, 기존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이 보수이다. 그리고 진보·보수 문제 이전에 가장 인간적인 문제에 대한 관점으로 봐도 북한체제를 옹호하거나 용인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문학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학이 정치처럼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지만 문학은 정치가 할 수 없는 깊고 넓은 영향력이 있다. 문학은 인간 개인이 집단의 이름으로 사유할 수 없는 것까지 사유하고 집단의 목표로 삼을 수 없는 것까지 목표로 삼는다. 정치성을 보일 수 있지만, 정치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


말과 글로 이루어진 문학은 공간과 시간을 넘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면 힘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진실된 말과 글은 10년 후에도 강한 힘을 갖고 작용할 수 있다. 이는 집단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호소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는다.”









▲지난 8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방민호 교수는 문학인은 “북한의 반체제 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구준회 기자


-문학인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은 전쟁광(狂)이나 반(反)통일론자로 비춰질 수도 있는데.  


“문학인은 북한에 대해 반체제 인사가 되어야 한다. 솔제니친(러시아 작가,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려진다), 가오싱젠(중국 작가, 중국 공산당의 공포정치와 독재정치에 대해 저항한 인물), 파르테르나크(러시아 작가. ‘닥터 지바고’를 통해 사회주의 현실에 대해 꼬집었다)가 되어야 한다. 소련도 러시아로 변할 때 문학인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반체제 문학인들이 탄압을 당하면서도 진실을 알려 소련 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도 지금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생각하는 진정한 작가라면 북한의 진상을 똑똑히 보고 북한체제의 모순을 알려야 한다.  


또한 정치인이 통일을 위해 하는 일과 문학인으로서 하는 일은 위상이나 방법에 있어 다를 수 있다. 정치인은 때로는 적과 타협하거나 손을 잡을 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학인은 그런 전략전술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고 결핍되면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말하고 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인으로서 중요한 임무이다.”


-문학인들은 북한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많은 문학인들이 북한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절박한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북한체제 아래 고통받는 북한주민들이 내 안에 들어와 절박하게 다가오는데 대다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또한 우리 문학인들에게는 피해의식이 많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좌익, 우익 하면서 서로를 학살했기 때문에 하나의 태도를 표방하면 권리가 제약되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강하다. 남북의 예민한 관계 속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른바 진보라고 불리우는 세력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들은 정치인들이 하는 사고를 하고 있다. 북한체제를 문제 삼으면 통일의 저해가 되고 개혁개방을 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문학인들이 정치인들의 사고법을 앞장서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을 이원적으로 봐야 한다. 북한의 지배집단과 북한 인민들. 북한체제는 유일사상 체계를 표방하면서 지배받는 민중들과는 실질적으로 이원화되고 괴리될 수밖에 없다.


문학인이 북한 지배집단과 교류하면서 악수하고 사진 찍고 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나. 문학인의 몫은 북한 지배집단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경종을 울리고, 북한 인민들에게는 따스한 눈길을 보내면서도 때론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각오해서라도 싸워야 한다고도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올바른 통일의 방법은? 또한 그 과정속에서 지켜야할 가치가 있다면.


“통일을 원하지만 통일 이전에 통합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둘이 섞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남북 모두 통일을 이야기 하지만 너무 다른 두 체제가 한꺼번에 섞이면 많은 문제가 발생된다. 우리가 북한체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상상할 수 없지만 북한도 우리의 자본주의를 바로 받아들인다면 또 다른 자본의 준 노예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의 자본주의를 북한에 어떻게 적용하고 북한의 상황에 어떻게 맞출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 통일 속의 통합적 사유.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향후 활동 계획은?


“북한인권을 외치는 것은 옳은 판단이다. 오늘 침묵했던 사람들은 통일 이후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은 문학인들과 단체에게 제안을 하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 지금이 ‘북한인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제안을 드리고 토론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 앞으로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할 것이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