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사적 쓰나미, 리비아 거쳐 김정일 덮치나?

I.
우리는 지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혁명의 문명사적 쓰나미를 보고 있다. 마르크스도 레닌도 모택동도 꿈꾸지 못했던 연쇄적 혁명의 물결이 일국의 국경을 넘어 30~40년 된 독재자를 마치 허수아비 끌어내듯 하나하나 물리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대전환의 순간에는 이 사건들의 의미 역시 거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1990년대 초에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의 한 순간에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사회주의 혁명’을 높이 내세우며 실제로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의 경제적 욕구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서도, 당(黨) 관료들과 군(軍) 장성들은 의사당 밑에서 스트립쇼를 보면서 권력과 각종 물질적 혜택을 독점하던 그 늙은 체제가 야기한 엄청난 사회적 압력을 젊은 국민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륙판이 부딪히는 곳에 지진대가 형성되고 지각이 지탱할 수 있는 장력(張力)을 넘어서면 어느 순간에는 대지진이 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지진대가 중동에 형성되어 있었고, 지금 중국과 북한에 명백하게 형성되어 있다.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는 그동안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사회의 억압체제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필자는 동구권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될 때, 그들의 사회주의 형제국가인 북한도 무너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칭 주체국가 북한은 사회주의 형제들의 원조에 의존해야만 그나마 경제를 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1990년대에 사실상 인재(人災)였던 대기근으로 약 300만명 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경제는 거의 완전 파탄에 이르렀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의 도움과 핵(核) 곡예를 통해 내부 통제력을 유지했다. 역사는 우회로를 선택한 것이다.



II.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라지고 약 20년이 지난 지금,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당시의 문명사적 변화에 버금가는 대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슬람 민주화 혁명에서 현 상태(status quo)유지를 바라는 다양한 외부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사적 쓰나미는 이런 잡다한 관심사를 무시하고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구절이 연상된다.


미국은 ‘아랍 국가의 민주화냐, 석유와 이스라엘의 안보냐’에서 항상 후자를 선택해 왔다. 그 결과 이슬람 민주화 혁명의 초기에 이런 일방적 중동정책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미국은 이슬람 민주화 혁명의 불가피성을 일찍 파악하여 이집트의 경우 무바라크와 적시에 인연을 끊었다.


중국은 이슬람 민주화 혁명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보려 하지 않는다. 수억 명에 달하는 농촌출신 도시노동자인 농민공의 비참한 현실, 인권탄압, 후진적 정치체제 등으로 ‘공산당 일당독재’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모순은 ‘프로레탈리아 혁명이 일어나야만 하는 사회적 조건이 공산당 일당독재 아래에서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국이 지금 인터넷을 제한하고 여러가지 검열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이슬람 민주화 혁명을 가장 바라지 않는 사람는 김정일이 아닐까. 그것은 조만간 쫓겨날 것이 틀림없는 카타피와 그의 자식들의 모습이 자신과 유사하다는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리비아의 잔인한 시위탄압에도 불구하고 카다피가 쫓겨나면, 이란 역시 현재의 대국민 탄압을 계속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은 신정(神政)체제보다는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는 도미노 현상이 불가피 하다.


이란은 북한의 핵개발 파트너이자 무기를 구매해주는 ‘돈줄’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란과 관계를 어려워지면 매우 큰 타격을 받는다. 나아가 전 세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할 때 열린경제를 유지해야 할 중국 역시 일정한 정도의 민주화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경우 북한의 수령체제는 더 비빌 언덕이 없어진다.


여기서 1990년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2011년의 이슬람 민주화 대혁명 사이의 중간 시점인 2000년에 시작되었던 햇볕정책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햇볕정책은 ‘우리민족끼리’라는 열병에 빠져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향하는 역사의 상상력에 눈을 감은 간주곡, 딜레탕트(dilettante)들의 외도에 불과했다.


한국의 좌파언론은 현재 이슬람 민주화 대혁명을 북한의 체제변화가능성과 전혀 연결시키지 않는다.


 이들의 보도에는 이슬람 민주화 혁명에 대한 표면적인 지지와는 달리 글의 행간에는 힘이 빠져 있고 맥도 풀려 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의 좌파는 ‘옹호해야할 현재 진행형 독재체제’를 품고 있는 반면,  우파는 이제 눈감고 봐줘야 할 어떤 독재자도 이 지구상에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한국좌파의 ‘역사적 반동성’이 바로 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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