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이 힘이 세면 대역죄가 된다

지난 10월 30일 오전이었다.

중국의 동북지방 연변 조선족 자치주 옌지(延吉)에서 싼허(三合)를 거쳐 총싼(崇善)으로 가는 길은 비에 젖어 있었다. 찬바람에 가랑비가 흩어지며 내렸다.

산비탈에 늘어선 늦가을 자작나무는 벌써 옷을 벗고 닥쳐올 삭풍을 견딜 태세다.

함경도와 중국 땅을 가르며 휘돌아 가는 두만강은 길게 이어간다. ‘두만강 푸른 물’도 이젠 옛말, 어둡고 칙칙한 강물에 거품이 일고 강변에는 시커먼 응진(凝塵)이 퇴적돼 있다. 동행자는 광산에서 나온 찌꺼기가 두만강에 그대로 버려진다고 귀띔한다.

총싼으로 가는 산 언덕배기에 조선족 시인 이욱(李郁)이 쓴 ‘할아버지 마음’이라는 시비(詩碑)가 서있다. 시비를 지나쳐 올라가면 두만강 너머 북한 땅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철광으로 유명한 무산(撫山)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무산시 전경.

두만강을 앞에 두고 산들은 병풍처럼 무산시 전체를 두르고 있다. 산세 지형만 보면 영락없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선식 마을의 확대형이다.

21세기의 정신적 변태들

오른쪽 멀리 무산 기차역이 보이고 중앙대로는 길게 뚫려 있다. 어두운 황토색 흙벽돌과 기와로 된 낮은 주택들은 대오가 정렬하다. 애초부터 계획도시였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생기(生氣)가 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중앙대로에 주민들이 오가는 모습이 간혹 눈에 띄었지만 도시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확성기에서 나오는 방송이었다. 뉴스를 전하는 듯 전형적인 북한의 남성 아나운서 목소리가 도시를 압도하며 강너머로 들려온다. 조선중앙방송의 뉴스를 받아 확성기를 통해 각 마을에 전하는 유선방송이다. 북한주민들이 듣는 뉴스는 이것이 유일하다.

야산에는 어김없이 구호가 눈에 들어온다. 구호도 이제는 하나로 통일됐다. ‘위대하신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다. ‘주체사상 만세’도, ‘김일성 수령 만세’도 사라지고 지금은 ‘김정일 장군 만세’ 하나뿐이다.

도시를 울리는 확성기 방송과 두만강변을 따라 늘어선 똑같은 구호들… 프랑스의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북한체제를 ‘공산주의의 쥐라기 공원’이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관대한 표현이다. 그저 ‘김정일 장군님의 말라죽은 공원’ 정도가 사실에 더 부합할 듯싶었다.

‘장군님의 21세기’와 ‘19세기의 북한주민’. 이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그것은 20세기 중반 공산주의 수령론의 19세기적 변태-‘장군님 사상’과 선군사상이다. 따라서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북한주민들을 제외하고 김정일 독재정권을 도와주거나 심정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들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상실한 정신적 변태들임에 틀림없다.

“먹고 살도록 내버려만 두면 고맙죠”

이튿날 오전. 연길의 허름한 다방에서 만난 함경도 출신 30대 남성은 말한다.

“국가가 우리에게 잘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중국식 개혁개방요? 기대 안합니다. 그저 먹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방해나 하지 말고 알아서 먹고 살도록 내버려 두면 고맙지요.”

그는 성실한 재중 탈북자였다. 중국에서 하루하루 불안하게 보내면서도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중국의 개가 먹는 음식을 북한에서 먹다 탈출하여 이제 사람의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고 했다. 이만 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했다.

그의 말은 이어진다.
“북한 체제요? 주민 1천명 중 한명이라도 지지해야 말이지요. 그저 (주민들이)엎드리고 있어서 그렇지 오래 못갈 겁니다.”

그는 기독교를 접했다. 그의 꿈은 부디 북한당국의 감시가 없어져서 마음이 불안하지 않고, 흩어진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밥을 같이 먹으며, 자기 전에 잠깐 기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하면 왕이 부럽지 않겠다고 했다.

‘꿈이 소박하시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목젖에 걸린다. 싱거운 사람처럼 각막이 젖어온다. 그의 꿈을 과연 ‘소박’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괜찮은 것인가, 무책임한 말 아닌가…

실제가 그렇다. 그의 심경을 들어보면 지금 북한주민에게 중국식 개혁개방은 아프리카 오지의 사람이 디즈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말이나 다름없을 듯싶었다. 먹고살기 위해 장마당 귀퉁이에 펼쳐놓은 좌판(매대)을 뒤엎지나 말고, 중국에서 보따리 물건 들여왔다고 군인들이 두들겨 패지나 말고, 비(非)사회주의 검열한다고 사람들 잡아서 가두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게 꿈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소박’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 국민 불안의 원인은 정권의 ‘무식’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김정일 정권을 바라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주민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시각에 따라 결과된 현실과 해결방향은 천양지차다. 하나의 관점이란 현실의 시비(是非)-선악(善惡)-손익(損益)을 가르는 결정적 척도인 것이다.

지금 한미동맹이 파탄에 직면하게 된 것도, 남한 내부가 완전히 좌우로 갈라선 것도, 정부와 국민 사이에 불신의 강이 흐르게 된 것도, 북한의 인권실현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무지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시각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어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사이비다.

해결방안은 간명하다. 먼저 김정일 정권과 2300만 주민에 대한 시각조정부터 새롭게 하는 것이다. 북한주민의 편이냐, 김정일 정권의 편이냐, 어느 편에든 확실히 서야 한다. 이 선택에서 절충주의와 중간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짝퉁 전문가다.

19세기적 수령론의 변태정권과 2300만 북한주민들은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것, 북한의 개혁개방과 진정한 민족공조는 김정일 변태정권의 전환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 지금의 대북지원은 말기 암에 걸린 환자에게 사탕발림 진통제를 놓고 있다는 것, 또 아무리 사탕발림을 해도 체제전환의 파도는 닥쳐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의 방법과 수단은 국민의 모든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그 과정이 고통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피해갈 수 없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용기와 양심이 없는 사람이다.

3일 어느 여당 의원이 무조건적 대북지원을 비판하는 야당 의원에게 “북한에 퍼주다 보면 변하겠죠”라고 말했다. 그 의원 개인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무식’이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식이 힘을 갖게 되면 ‘죄’가 된다. 그것도 대역죄가 된다. 1백여년 전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준비도 못한 채 나라의 운명을 거덜낸 것도 ‘무식’이 근본원인이었다.

‘무식’이 민족 앞에 대역죄를 지은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가 바로 그렇다. ‘무식’이 너무 힘이 세다. ‘무식’이 우리사회의 전면에 나서 있는 것이다. 전 국민이 불안해 하고 있는 근본원인이 여기에 있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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