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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야당 인사를 검거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정국이 회오리 치고 있다.
무샤라프는 11월 3일 국영 TV에 예고없이 출현해 구국의 결단이라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때를 같이 해 반정부 인사 및 야당 인사에 대한 무차별 검거에 나서 무려 500여 명이 파키스탄 군경에 체포되었다.
무샤라프 정부는 인터넷도 금지시키고 라디오와 TV 송출도 차단하였다. 국민들의 언로를 막은 것이다.
무샤라프는 “현 상황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지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파키스탄은 자멸하고 만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대법원장을 해임시켰다.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도 파키스탄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며 비상사태 선포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였다.
무샤라프의 최대 정적인 부토 전총리도 두바이를 방문하던 중 발생한 사태의 소식을 접하고 즉시 귀국하였다.
지난 9월 10일, 8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가 공항에 내리자 마자 재추방돼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던 샤리프 전총리도 “국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축출해야 한다”며 전국민적 봉기를 촉구하였다.
파키스탄의 신문들은 “무샤라프의 두번째 쿠데타” 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고 비상사태 선포를 비난하였다.
무샤라프가 갑자기 국가 비상사태의 모험수를 던진 것은 자신의 대통령직 유지와 관련 대법원이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이 임박하면서이다.
지난 10월 6일 무샤라프는 야당 의원이 불참한 간접선거에서 97%의 압승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야당은 퇴역 후 2년이 지나야 공직 선거에 나설 수 있는 규정에 따라 육군참모총장을 겸직하고 있는 무샤라프는 원천적으로 후보 자격이 없다는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이 소(訴)를 받아들여 판결이 날 때까지 당선자를 확정할 수 없도록 했다.
판결이 임박한 가운데 대법원이 야당의 손을 들어 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대두되었다. 위기 의식이 팽배해지자 무샤라프는 전격적인 행동 개시로 헌법의 정지를 선포하는 모험수를 던진 것이다.
1999년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무샤라프는 쿠데타를 일으켜 샤리프 내각을 축출하고 정권을 쥐었다. 이어서 2002년에는 4월 국민투표를 실시해 5년간 임기를 보장받았으며 지난 선거에서 간접선거로 3차 집권을 노렸다.
무샤라프의 최대 경쟁자인 부토 전총리가 지난 10월 18일 귀국하였으며 환영행사 도중 자살폭탄테러가 발생 139명이 사망하는 등 정국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국민들의 반정부 공세가 극에 달한 가운데 전격적으로 시도된 무샤라프의 정권 연장 친위쿠데타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만일 이 조치가 실패한다면 무샤라프는 정권은 물론 생명의 안전도 보장받기 어려운 심각한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