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안길로 접어드는 `승부사’ 힐

미국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6자회담의 결과물이 될 의장성명에 대한 막바지 논의가 한창이던 11일 오후 5시(현지시간) 홀로 회담장인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빠져나왔다.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편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지난 8일부터 계속돼 온 회담에서 사실상 조퇴한 것이다.

어쩌면 이 장면이 북핵문제에 4년 가까이 투신하며 온갖 어려움을 뚫고 6자회담을 진전시켜 온 힐 차관보의 수석대표로서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내년 1월20일 미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 그는 수석대표 자리를 내놓는 것은 물론이고 외교관에서 은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북핵의 전모를 파헤칠 수 있는 토대가 될 검증의정서에 합의하고 비핵화 2단계(불능화 및 대북 중유지원)를 마무리하는 일정을 짜겠다는 ‘마지막’ 임무에 실패한 채 쓸쓸히 사라질 처지인 것이다.

특히 이번 회담 전에는 고비마다 북핵문제를 진전시켜왔던 북.미 양자회동을 더 이상 갖지 말라는 훈령까지 받은터라 부시 행정부가 퇴장할 때까지 남은 한달여간 그가 활약할 공간은 더욱 좁아졌다.

그는 이날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까지 “검증의정서에 합의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불태웠지만 그의 재임중에 실현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05년 3월 주한 미 대사에서 6자회담 수석대표로 발탁된 힐 차관보는 끈질기고도 유연한 협상태도로 북핵협상을 진전시켜왔다.

2005년 9월 한반도비핵화의 설계도로 평가되는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냈고 작년에는 북핵문제의 발목을 잡아오던 ’BDA(방코델타아시아) 사태’를 해결하기도 했다.

비핵화 1.2단계를 규정한 2.13합의, 10.3합의 등은 ‘일부에서 불완전한 합의’라는 지적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북핵문제를 아무도 가보지 못한 ‘불능화’의 단계로 이끈 것이라는 점에서 그 공로는 무시할 수 없다.

힐 차관보는 미국내 강경파와 일본 등으로부터 ‘김정힐’(김정일과 힐의 합성어)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정도로 한편에서는 ‘너무 북한의 입장을 생각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특히 지난 10월 1∼3일 평양협의에서 시료채취를 포함한 과학적 검증방법에 합의했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지만 이번 회담에서 검증의정서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북한의 의도를 잘못 읽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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