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北공교육③]‘좋은일하기’ 노력동원 30년…학교 출석율 62% 머물러

북한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북한 당국으로부터 2중, 3중의 수탈을 당한다. 어린이들이라고 예외는 없다.

북한에서 학생들에 대한 노동력 수탈행위는 70년대 ‘좋은일하기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시작됐다. 70년대라면 김정일이 후계자 발판을 닦기 위해 김일성에게 온갖 충성을 다 보일 때였다.

김정일은 70년대 중엽부터 북한 각 시군에 ‘5호 관리소’라는 노동당 자금전담 기구들을 만들어 놓고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외화벌이 과제’를 주도록 했다.

◆ ‘토끼 기르기’에서 얻은 힌트, 노다지 캐는 보배들

초창기 김정일이 시작한 학생 동원 사업은 소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에게 집단적으로 토끼를 기르게 하는 것이었다. 김정일은 학교들마다 ‘토끼 기르기’운동을 장려하면서 이를 ‘나라와 인민을 위한 좋은일하기 운동’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북한은 각 세대마다 1년에 ‘개가죽’ 1장씩을 의무적으로 바치게 하는 한편 마을 주변의 농지들마다 역삼(삼과 비슷한 식물로 줄기의 껍질은 실로 쓰고 씨는 식용유의 원료로 쓴다)을 심도록 했다.

각 학교들에서는 ‘토끼 사육장’을 짓고 집단적으로 토끼를 키우도록 했다. 또 학교마다 기르는 토끼와는 별도로 1년에 소학교 학생들은 토끼가죽 1장씩, 중학교학생들은 2장씩 바치도록 의무화했다.

70년대 중반부터 시작 된 북한의 ‘외화벌이운동’은 대단했다.

지방마다 설치된 ‘5호관리소’들에서는 의무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외화벌이 품목 외에 줄당콩(동부, 紅荳라 불리는 콩) 1kg 당 나일론 양말 1컬레, 말린 고사리 1kg에 당과류 500g 식으로 외화벌이 품목을 교환해줬다. 또 지방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역 할 ‘옥파(양파)농장’, ‘인삼농장’들도 신설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토끼기르기 운동’은 김정일에게 짭짤한 수입을 안겨주었다. 당시 북한은 “청소년학생들이 ‘좋은일하기 운동’으로 1천만장 이상의 ‘토끼가죽’을 나라에 바쳤다”고 선전했으니 그 규모가 대단한 것이었다. 북한 당국은 특히 토끼 가죽을 많이 바치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소년영예상’을 비롯한 표창도 하면서 학생들을 ‘좋은일하기 운동’에 적극 유도했다.

학생들에 대한 동원사업에 재미를 본 김정일은 ‘좋은일하기운동’을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1976년부터 김정일은 ‘기름나무림’ 조성사업을 발기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맡겼다. 학교마다 일정한 산지를 분배받아 ‘소년단림’과 ‘사로청림’을 조성하고 여기에 잣, 호두, 가래, 밤나무와 같은 기름원료로 되는 나무들을 심도록 하였다.

북한은 모든 학생들을 만 7세부터 의무적으로 ‘소년단’에 가입시키고, 만 14세부터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구 사로청)에 가입시켜 조직생활을 시킨다.

더 나아가 80년대 초부터는 각 학생당 해마다 고철, 파동(구리), 알루미늄, 병 등을 수집할 과제를 주고 수매증(재활용품수거증서)을 바치도록 했다.

현재 북한은 금속생산을 높인다는 구호를 들고 한국의 초, 중, 고에 해당되는 모든 학생들에게 1인당 1년에 파고철(고철) 14kg씩 의무적으로 바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야말로 북한의 학생들은 돈 한 푼 안들이고 노다지를 캐는 ‘귀중한 나라의 보배’(?)들인 셈이다.

◆ 등골이 휘는 아이들, 사회적 노역에 시달려

1986년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제작한 북한 영화 ‘우리 작업반장’에서 주인공 순영은 “강냉이영양단지는 ‘학생단지’다”라는 대사를 읆조린다. 해마다 학생들이 치루는 고역을 풀이한 말이다.

1980년대 소위 ‘김정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생들은 온갖 사회적 노력동원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겨울철마다 각 지역 스케이트장을 만드느라 강에서 물을 퍼 날라야 했고, 철도지원, 수영장 건설, ‘내 마을 내 학교 꾸리기’ 등 작업이 없는 날이 없었다.

특히 중학교 3학년부터 해마다 동원돼야 하는 ‘농촌지원’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노동력 착취다. 해마다 봄철이면 강냉이 영양단지, 모내기 전투에 열흘씩 동원돼야 하고 가을철이면 한 달간씩 감자파기, 가을걷이에 동원된다.

학생들은 농촌집 방에 5, 6명씩 집단거주하며 덮을 이불조차 변변히 없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가을걷이를 해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여름철에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열흘씩 ‘고사리방학’을 주어 고사리나 고비 같은 산나물을 채취해 바치도록 했다.

김정일이 학생들을 노력동원에 내몰다보니 지방 간부들도 노동력이 필요하면 수시로 학생들을 동원하는 관례가 생겼다.

시군에서 제기되는 철길보수작업이나 도로보수와 같은 일들이 제기되면 공장기업소들과 함께 의례히 각 학교들에 공사 구간이 맡겨졌고 학생들이 총 동원돼 맡은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일요일(북한은 일요일 하루만 휴식을 함)은 모든 학생들이 의례히 노력동원에 참가하는 날로 인식돼 있다.

학교운영에 필요한 부담과 사회적 동원이 잦다보니 학생들은 점점 교육현장에서 멀어졌고 학교운영자들도 학생들의 학업 성취보다는 학교유지 자체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교육현장도 많이 달라졌다. 도시락을 준비할 수 없는 학생들이 많아 사회적 동원에 학생들을 내 몰기가 어려워졌고, 학생수의 급격한 감소와 자퇴 학생의 증가로 학교운영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이다.

북한 내부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당 교육부가 집계한 학생들의 평균 등교율은 62% 수준이다. 하지만 학교에 등교를 하고도 개별적인 과목들에 빠지는 학생들을 계산하면 실제 출석율은 절반수준으로 떨어진다.

학생들의 결석은 특히 토요일에 더욱 심한데 토요일이면 ‘생활총화’ 및 각종 과제물들에 대한 주간 총화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최근 ‘150일 전투’와 관련 학생들의 충성심교양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예전과 180도 달라졌다.

1980년대 북한의 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면 김일성의 동상이나 유화작품 주변에 나가 ‘정성사업(청소)’을 하는 것을 하루일과의 시작으로 여겼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일성의 동상주변을 청소하는 학생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오히려 그런 장소에 가는 학생들을 ‘아첨꾼’이라고 비난하며 ‘왕따’ 시키는 풍조가 생겨났다.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 지난 7월 8일, 김일성 사망날을 기념해 ‘보천보전투기념탑’에 있는 김일성 동상 청소작업에 학생들을 조직 동원했다.

학교마다 청소작업에 동원된 학생들에 대해 인원 파악까지 했지만 8일 당일에만 일부 학생들이 참가했을 뿐 그 다음날부터는 학생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내부소식통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