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北공교육④]北 ‘고난의행군 世代’, 태풍의 눈 되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에 걸쳐 북한은 저출산 장려운동을 펼치며 여성들의 피임을 적극 장려했다. 한 가정에 두명 이상 낳지 말라는 선전을 꾸준히 펼쳤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는 돌연 출산장려운동을 펼치게 된다. 생산과 건설을 비롯한 모든 분야가 ‘공장제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북한의 실정에서 노동력의 감소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아무리 출산장려 선전을 강화해도 보육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고 자녀들을 양육 부담이 커지면서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기만 했다. 이는 교육 현장에도 심각한 문제로 나섰다.

▲ 저출산 요인은 보육환경과 교육부담 문제

일반적으로 북한의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책임져야 할 시기를 만 17세로 잡는다. 북한의 청소년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는 만 16부터 군복무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이듬해인 만 17세부터 성년으로 규정되는 공민증(주민등록증)을 발부받고 선거권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북한은 지역별로 넘쳐나는 학생들을 감당하기 위해 학교건설을 꾸준히 진행했다. 당시까지 북한은 남자중학교와 여자중학교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70년대 말 ~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통 학급 당 학생 수는 50명 좌우였고, 학급수도 많았다. 그나마도 교실들이 부족해 학교들마다 오전에 공부하는 학생들과 오후에 공부하는 학생들로 나누어 ‘오전반’, ‘오후반’이라는 것을 운영했다. ‘오전반’은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공부했고, ‘오후반’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런 교육구조는 84년을 기점으로 완화되기 시작한다. 우선은 북한 당국이 학교들을 많이 건설하여 교육환경이 개선된 점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출산율이 급격히 줄어든 원인은 당시 주변 사회주의나라들에서 인구제한정책, 남한의 저출산 정책과도 맞물려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도 산아제한으로 국민소득을 올려보겠다는 남한의 저출산 정책이 체제경쟁 의식에 사로잡혔던 북한의 권력층까지 변화시켰다. 또 당시 구소련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자기 대(代)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사조가 북한 지식층에까지 확산됐고, 중국의 강력한 인구제한 정책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요인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북한의 한심한 보육정책과 교육정책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80년대 중반부터 유치원과 탁아소, 학교들에서 학생들에게 부담시킨 난방비와 시설유지를 위한 비용은 모두 학부모들의 책임으로 전가됐다.
89년 북한은 남자중학교와 여자중학교를 모두 합쳐 남녀공학 중학교로 개편했는데, 이 때 상당수 중학교들이 폐교조치됐고, 학급당 학생수는 30~40명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는 북한에서 얼마나 빠르게 학생 수가 감소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출산율 감소로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군대였다. 90년대까지 북한은 ‘의무병역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군 복무경력이 사회적인 인재등용에 첫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사실상 의무병역제나 비슷한 실정이었다.

70년대까지 북한에서 군 복무연한은 7년, 특수병종의 경우 10년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복무연한을 10년으로 늘렸고 1989년경부터는 복무기한을 13년까지 늘리는 비상조취를 취했다.

대부분의 중학생들 졸업후 군대에 나가야 하는 실정에서 군복무의 연장은 사회적인 노동력의 부족현상을 심화시켰고, 인재들의 고갈로 대학과 과학기술부분에도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마침내 북한은 2002년부터 ‘의무병역제’로 전환하는 대신, 군 복무연한을 10년으로 단축하는 조취를 결정했다.

줄어드는 인구문제 때문에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도 출산장려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나 워낙 생활이 어려워 최근부터는 한 가정에 자식 한명만을 두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남한도 출산문제가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보육환경과 교육환경의 악화로 북한의 출산문제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 ‘고난의 행군’으로 도산된 학교들, 2012년부터가 주목

북한의 가장 심각한 고민은 ‘고난의 행군’으로 비어있는 세대를 무엇으로 메우겠는가 문제다. 94년 가을부터 시작된 ‘고난의 행군’은 98년 여름까지 이어졌으며 그 사이 식량난으로 인한 대규모 아사사태와 출산공백상태가 지속됐다.

출산공백상태는 현재까지 북한 교육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함경북도 내부소식통은 “최근 고등중학교 1학년부터 3학년 사이 빈 교실들이 수두룩하다”면서 “특히 농촌학교들의 경우 한 학년에 3~4명만 있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왔다. 중학교의 경우 학년별, 학과목별로 담당교원들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몇몇 학생들을 위해 10여명이 넘는 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 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중학교 과정에 ‘심리학’, ‘윤리학’, ‘미일 제국주의 침략사’와 같은 여러 과목들을 늘리고 교원들도 확충했다. 교원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상대적으로 학생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학생수의 감소로 인해 북한 당국은 지난 2002년 이후부터 대부분의 분교들을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학교가 멀리 떨어진 농촌지역 작은 마을 학생들을 위해 분교를 운영해 왔으나 학생수의 감소로 분교들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가부장적 가정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북한사회에서 대부분 여성들이 장마당에 앉아 가정의 생계를 이어야 하는 무거운 부담을 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 이후부터 결혼을 하지 않고 독립해서 사는 여성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독립하는 여성들이 늘어가는 사회적 환경 또한 북한에서 출산율 감소의 또 다른 원인으로 되고 있다.

문제는 2012년 이후다. 북한은 2012년을 ‘사회주의 강성대국 완성의 해’라고 떠들어 대고 있다. 북한이 2012년에 사활(死活)을 거는 이유 중에는 2012년부터 사회에 등장할 ‘고난의 행군’ 세대들로 인한 노동력 공백의 우려도 있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던 1995년부터 태어난 세대들은 2012년부터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때에 가면 북한 당국은 군 병력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심각한 인력난에 직면하게 된다.

대북 소식통들에 의하면 북한 당국도 ‘고난의 행군’세대들의 공백으로 인한 과학, 경제적인 손실을 걱정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적어도 10년 이상 북한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백을 대체하려면 경제를 회복시키고 자동화 된 시스템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하지만 아직까지 붕괴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북한의 경제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난의 행군’으로부터 근 15년이 지나고 있지만 식량문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건설된다는 2012년은 ‘고난의 행군’ 세대와 더불어 북한 붕괴의 기폭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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