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北공교육⑤]北청소년, 학업 뒷전 ‘제3경제’에 내몰려

공부를 포기한 북한 청소년들이 주로 선택하는 일은 장사다.

태어나면서부터 배고픔과 빈곤에 훈련된 북한 청소년들은 한글과 구구단만 떼면 장사에 눈을 돌려야 하는 환경에 놓인다. 배급제가 붕괴된 북한에서 개인의 생존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으니 아이들도 본능적으로 장사 눈치부터 배우게 된다.

올해 들어 ‘150일 전투’를 비롯한 각종 주민동원사업이 많아지면서 성인들의 장사 활동이 통제를 받게 되자 그 빈자리를 청소년들이 메우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 장사하는 아이들을 빗대어 ‘제3경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원래 북한 당국은 인민경제분야를 제1경제, 군수경제분야를 제2경제라 지칭한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북한의 시장이 발전하면서 주민들을 새로운 의미로 구별했다.

제1경제는 북한당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2경제는 시장과 인민들이 주도하는 경제이다. 제3경제는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경제’라는 뜻을 담고 있다.

▲ ‘제3경제’ 출연, 거리로 나서는 아이들

북한 양강도 소식통은 “7월 6일 김정숙군을 지나는 도로에서 혜산중소탄광연합 자동차가 굴러 8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왔다. 사망자 중 5명은 혜산시 혜화중학교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은 중국 물건을 가지고 김형직군으로 장사를 하러 길을 나섰다가 이런 참변을 당했다.

북한 시장들은 ‘150일 전투’ 동원령 때문에 대부분 개장 시간이 오후 4시로 늦춰졌다. 때문에 주택가 곳곳에 골목시장이 형성되고 있는데, 이런 골목시장에서는 어른들의 자리를 대신하는 청소년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소식통은 “‘150일 전투’로 부모들이 직장에 무조건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고에 쪼들리는 세대에서는 아이들이 먹고사는 일에 나서고 있다”면서 “아이들의 장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장사에 나서는 청소년들은 꽃제비나 불량배들이 아니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부모를 대신해 골목시장에 나간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장사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못난 부모를 만난 탓’이라는 사회적 동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고 일찍부터 제 앞가림에 나서는 일종의 ‘똑똑한 사람’이다.

장사에 나선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수령과 지도자, 국가, 당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학교에서 장사와 관련된 정보, 아이디어를 얻는다. 학생들끼리 흥정을 하고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흔한 일이 됐다.

소식통은 “요즘 시장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물건이 잘 팔리지 않으면서 학교에 직접 물건들을 가져다 파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학급 동무들끼리 이뤄지는 거래는 사회 시장보다 더 높은 ‘신용’을 보장한다. 가격흥정도 쉬워 부모들까지도 자식들을 통해 필요한 물건을 구해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학생들의 가방이 장사가방으로 변하고 있다”며 “장사용 책가방을 뒤지면 책은 없고 껌, 사탕, 명태, 양말과 같은 물건들만 가득하고 심지어 같은 학급 학생들을 상대로 담배만 전문적으로 파는 아이들도 있다”고 전한다.

▲학생들 장사 실태에 北 교육당국도 ‘충격’

청소년들의 장사 ‘붐’은 북한 교육당국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6월 30일 양강도 혜산시 교육당국이 위연중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에 가방검열을 실시했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의 가방에서 장사물품이 나왔다.

이날 검열 중 가장 많이 나온 물건은 중국산 껌과 볼펜, 수첩, 라이터, 그리고 지금 한창 중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국산 체육모자와 반바지, 셔츠 등이었다.

심지어 돌멩이나 쇠구슬을 넣어서 쏠 수 있는 중국산 장난감 권총과 담배까지 나왔다. 학생들의 가방은 그야말로 시장 매대의 축소판이었다.

이날 가방검열 결과는 양강도 도당에까지 보고됐다고 한다.

북한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장사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부류로 꼽힌다. 우선 가정의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조숙한 학생들이 장사를 한다. 다른 부류는 또래 친구들의 장사가 보편화되자 용돈벌이용으로 장사를 하는 중산층 가정의 학생들이다.

특히 학교에서 요구하는 각종 사회적 지원품 때문에 장사를 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학교에서는 학교 내 시설물 보수, 각종 사회 건설현장에 보내야 할 위문품 마련 등의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다. 심지어 시집가는 학급담임의 혼수마련을 위해서 돈을 걷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은 장사를 해서 이렇게 필요한 돈을 충당한다. 학교 다니는데 필요한 돈을 버는 일종의 ‘학비 마련 아르바이트’ 개념이다.

집안을 위해 장사에 나선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들이 직접 거래 물건을 챙겨주고 이윤을 따지기 때문에 부모들의 장사범위를 거점으로 장사를 한다.

문제는 용돈벌이를 위해 장사를 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은 범죄유혹에도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용돈벌이에 나서는 학생들은 여러 명이 한 조를 이루어 행동한다.

농촌학생들은 주로 바닷가 조개잡이, 사금채취, 약초 캐기와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벌어 서로 나눠 갖지만, 도시 학생들의 경우 밀수나 절도 같은 범죄행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사라져가는 북한의 ‘희망’

이러한 세태는 자식들까지 범죄행위에 가담시키는 매정한 부모들을 등장시켰다. 청소년들을 활용하면 북한 당국의 단속을 좀더 쉽게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5일 양강도 혜산경기장에서는 공개재판이 열렸다. 재판에 회부된 6명의 죄목은 ‘마약판매’였다. 그런데 그중 4명은 자기 자식들이나 같은 인민반 여중생들을 이용해 마약을 운반시켜 왔다.

청소년들의 장사행위가 보편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그들의 생활문화도 바뀌고 있다.

수년 전만 해도 북한의 청소년들은 학교별로 패싸움을 자주했다. 혈기 왕성한 10대들은 길에서 눈만 마주쳐도 시비가 붙을 정도였다. 일단 싸움이 나면 학교의 명예랍시고 너도 나도 동참하기 때문에 눈 싸움이 패싸움으로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식통은 “지금은 서로가 협조하며 장사를 하는 ‘거래관계’가 깊어진 탓인지, 학교 간 패싸움이 없어졌고 다른 학교 학생들끼리도 잘 지내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양강도 혜산시의 경우 ‘마산중학교’나 ‘춘동중학교’, ‘검산중학교’와 같이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들은 주로 고철이나 약초 등을 국경지역 중학교 학생들에게 조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역으로 압록강지역 학교들인 ‘혜탄중학교’나 ‘강안중학교’, ‘성후중학교’ 학생들은 국경밀수를 통해 유통되는 물품을 주변 학교 학생들에게 넘겨준다. 이른바 학교 간 ‘유통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북한 청소년들은 자기 용돈 뿐 아니라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다. 여기에 학교에서 요구하는 각종 모금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기아로 수십만 명의 영유아들이 사망하거나 질병 후유증을 앓았다. 그 아이들이 이제는 장사를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북한의 기성세대들은 벌써부터 10년 후, 20년 후 미래를 걱정한다. 다음 세대들을 나라의 기둥으로 키울 교육이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기획 ‘무너진 北 공교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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