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뉘앙스 ‘北-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새 딜레마?

6자회담이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간 열린다. 뒤를 이어 10월 2일~4일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두 회담 모두 동북아 정세에 일정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런데 회담의 전개 양상에 따라 포괄적인 북한문제, 또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좋은 방향으로 그럭저럭 갈 수도 있고, 아니면 나쁜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게 되어 관심을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좋은 방향’으로 유도되는 경우는 북한이 갖고 있는 핵무기, 핵물질, 핵프로그램 등 핵활동 전반에 관한 신고를 투명하게 하고, 핵시설 불능화도 성실하게 진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것은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문의 진행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전개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을 둘러싼 문제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북-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9월 6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 이후 12일자 뉴욕타임스가 “북한이 시리아에 핵 설비(facility)를 판매한 것으로 이스라엘이 믿고 있다”는 보도를 하면서 처음으로 북-시리아 핵 커넥션 의혹이 떠올랐다. 그런데 첫 보도가 나온 지 열흘 정도 지나면서 당초의 ‘단발성 의혹’ 수준을 크게 벗어나고 있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게 되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23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지난 6일 시리아 북부지역을 폭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특수정예부대가 미리 이 지역의 비밀 군기지에 침투해 ‘북한산 핵물질'(nuclear material)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 그대로라면 매우 충격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23일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핵 문제는 여전히 해명돼야 할 의문이 많다”고 언급했다.

라이스 장관은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의 회담에 앞서 기자들에게 “솔직히 말해 해명이 필요한 많은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이 명시적으로 ‘북-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참석한 기자들은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충분히 이해되었다.

선데이 타임스 보도 사실 여부 촉각

24일 현재까지 선데이 타임스가 보도한 ‘핵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밝혀진 게 없다. 미 국무부나 백악관도 선데이 타임스 보도에 대해 공식 반응이 없다. 시리아 정부만이 선데이 타임스 보도가 나오자 곧바로 부인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이 설정한 레드 라인(red line)은 북한이 핵 물질을 해외에 이전하는 경우이다. 미국은 이 경우 ‘전쟁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따라서 만약 이스라엘 특공대가 확보한 ‘핵물질’이 핵무기, 플루토늄, 핵 장비(equipment), 핵기술과 관련한 것이라면 ‘전쟁의 사유’에 해당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선데이 타임스 보도를 요약하면,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몇달 전부터 시리아 북부 ‘다이르 아즈 즈와르’의 한 군사시설에 북한 기술자와 핵 관련 물질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폭격 계획을 세웠지만 부시 대통령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해 폭격을 유보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증거 수집을 위해 이스라엘 국방부 직할 특수부대 ‘사라예트 마트칼’ 대원들이 현장에 침투, 관련 물질의 샘플을 빼내와 정밀분석한 결과 이 물질은 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확인돼 미국이 폭격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또 에후드 바라크(Barak)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 F-15기 편대에 직접 폭격 명령을 내렸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당일 폭격 목표를 하달 받을 정도로 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됐다고 한다. 신문은 또 이날 폭격으로 다이르 아즈 즈와르의 군사시설이 완전히 파괴됐으며 현장에 있던 북한인도 수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선데이 타임스는 또 앤드류 셈멜(Semmel) 미 국무부 핵확산방지 담당 부차관보 직무대행이 9월 14일 “북한 기술자들이 시리아에 있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시리아는 핵 장비를 얻기 위해 이 ‘비밀 공급업자들’과 접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선데이 타임스는 취재원(source)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소식통’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흔히 ‘정보 소식통’이라면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대체로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 또는 그 주변 인물’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미국 취재원의 경우 국토안보부, CIA, DIA(미 국방정보국) 및 그 주변이 유력하고, 이스라엘은 ‘모사드’ 관련 인물 또는 그 주변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보도 내용은 사실 여부가 의심이 갈 정도로 구체적이다. 만약 ‘핵 관련 물질’과 그 ‘샘플’이 실제 어떤 ‘핵물질’인지에 대해서만 밝혀지면 사건의 얼개가 거의 완성될 정도로 상세하게 보도되었다. 12일 뉴욕타임스 첫 보도 이후 열흘 만에 나온 보도라는 점에서 아주 발빠르다고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12일자 뉴욕타임스 보도 이후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나 16일 북한의 김명길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가 “시리아와의 핵 협력 의혹은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자,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북한과 시리아 간 핵 협력 의혹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우려대상”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당초 19일 열리기로 예정된 6자회담이 27일로 갑자기 연기됐다. 외신에 따르면 6자회담 미국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다 싸놓고 거의 출발 직전에 이 소식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북-시리아 핵커넥션 때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외신 보도가 맞다면 ‘아주 중요한 정보’가 급박하게 힐 차관보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9월 20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 기술을 시리아에 전달했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요청에 거듭 답변을 피하면서 “북한이 6자회담의 성공을 원한다면 무기 확산을 해선 안된다”는 발언을 계속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 답변에서 핵무기(nuclear weapon)라는 표현 대신 ‘무기'(weapon)라는 표현만 거듭 사용했다. 이 말이 적어도 재래식 무기를 의미하지는 않는 이상, 북한과 시리아 사이에 오랫동안 계속 돼온 ‘미사일 협력’인지, 아니면 새로운 ‘핵무기 협력’인지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뉘앙스로 비쳐진다.

그런데 선데이 타임스 보도 이후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의 핵 문제는 여전히 해명돼야 할 의문이 많다”고 언급했다. 여기에서 ‘여전히 해명돼야 할 의문’은 ‘핵확산 문제’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미국이 북한에 해명을 요구해온 항목은 HEU(고농축우라늄) 또는 UEP(우라늄농축프로그램)와 관련한 것이었는데, 최근 북한이 고강도 알루미늄 구입에 대해 미국에 설명했고 미국은 여기에 상당부분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전히 해명돼야 할 의문이 많다’라는 표현은 새롭게 불거진’북한의 핵 확산 문제’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라이스가 ‘해명돼야 할 의문이 많다’고 언급한 이상, 27일 6자회담에서 ‘북-시리아 커넥션 의혹’에 대한 북한의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고, 미국은 그런 기회를 통해 북한의 핵활동 상황에 대해 자세한 신고를 들어보겠다는 의미도 묻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이스라엘 특공대가 확보한 ‘북한산 핵물질’에 대해 미국이 이스라엘로부터 정보의 전모를 협조받았을 것은 거의 틀림없는 만큼, 미국은 ‘증거’를 이미 확보한 상태에서 북한이 자신의 핵활동에 대해 ‘성실 신고’를 하는지, 아니면 거짓 신고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선데이 타임스 보도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핵 관련 물질의 샘플’로 표현된 ‘증거'(hard evidence)의 수준이다.

시리아와 북한이 오래 전부터 미사일 협력을 해온 것은 틀림이 없다. ‘미사일 협력’이란 북한이 시리아를 통해 주로 이란과 이라크에 미사일을 밀매해온 것을 말한다. 91년 걸프전 와중에도 북한의 중앙당 작전부(부장 오극렬)는 다국적군의 추적을 따돌리고 두 척의 민간 선박을 이용하여 시리아를 경유하여 이라크에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을 밀매한 적이 있을(작전부 출신 증언) 정도로 시리아는 이란-이라크로 이어지는 주요 경유지였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번에도 9월 3일 북한의 선박이 시리아 항구에 입항한 사실이 포착되었고, 이러한 정황을 이스라엘이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후세인 정권이 사라진 이상 북한이 시리아를 경유했다면 이란과 연결되는 모종의 사업일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또 시리아는 핵개발의 증거가 아직 없는 만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란 핵(농축 우라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쁜 시나리오는 북한이 갖고 있는 농축 우라늄 관련 설비를 시리아를 경유하여 이란에 밀매하려 한 경우를 상정해볼 수 있다. 가능성이 낮지만 이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농축 우라늄 기술이나 핵무기를 직접 판매하려고 한 경우이다. 어찌 됐건 ‘미사일 협력’ 증거가 아니라 ‘핵 협력’ 증거로 드러날 경우 6자회담의 앞날에 심각한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북한이 이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변이나 해명이 없을 경우 관련 5개국은 북한 핵문제의 처리 방향을 원점에서 다시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 내부 정밀 관찰해야

또 북한의 ‘핵 협력’ 증거가 분명할 경우, 이와는 별도로 한국을 비롯한 관련 5개국은 6자회담이 문제가 아니라 김정일 정권의 내부 문제를 정밀하게 다시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핵실험까지 하는 강공전술을 펼치면서도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레드 라인으로 그어놓은 ‘핵물질 대외 이전’ 만큼은 하지 않아 왔다. 현실적으로 PSI가 가동되고 있었고 아프간 정권에 이어 후세인 정권이 축출되는 모습을 김정일이 직접 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레드 라인을 지켜왔다고 볼 수 있다. 또 지금 6자회담이 미-북의 주도 속에 어쨌든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이 미국을 속여가며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시리아와 위험한 ‘핵 거래’를 했다고 믿기도 어렵다.

그런데 만약 ‘핵 거래’라는 증거가 물질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만, 김정일도 모르는 상태에서 핵관련 물질이 ‘유출’되었을 경우도 한번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는 쉽게 말해 김정일의 절대권위가 제대로 ‘영(令)이 안 서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데, 보위부나 군부, 당 고위관료, 군 보위사령부 등을 끼고 이른바 ‘한탕주의’ 모험을 감행하려는 일부 외화벌이 일꾼들을 염두에 둘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북한은 주체사상이니, 당 생활총화니 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어지고 ‘돈 사상’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주민들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북 간 우호적 분위기나 북한의 핵폐기 소문이 북한 권력 내부에 돌아다닐 경우, 김정일이 내심 의도하고 있는 일시적인 대미, 대남 유화전술과는 상관없이 희귀한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 권력층을 비롯하여 일반주민들의 외화벌이는 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지금 거의 20년이 되었다. 당-군-국가라는 북한사회 운영 시스템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김정일 1인에 모든 중요한 판단이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만성적인 부패 현상도 20년이 넘었다.

2000년 이후 한 미 중 일 등의 정보기관들은 대체로 ‘김정일 정권의 내부에 뚜렷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는 평가를 내놓아 왔다. 대체로 틀리지 않는 분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 ‘피로현상’이 북한사회 전반으로 퍼질지 알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12일 뉴욕타임스 보도에서 시작된 ‘북-시리아 핵커넥션 의혹’이 6자회담과 이후 북한 정세와 관련하여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우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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