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차’라도 몬 사람이 ‘소나타’ 운전

북한의 교육수준은 비교적 높다

동서 냉전 시기 서방세계에서 ‘스탈린주의’라고 하면 악마의 표상처럼 여겨졌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함께 묶어서 비꼬는 카툰(cartoon)이 유럽 신문에 자주 소개되기도 했다.

스탈린주의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지상에는 지옥도 없고 낙원도 있을 수 없다. 아무리 나쁜 제도라고 할지라도 찾아보면 장점도 없지는 않다.

1930년대 소련에서 시작되어 1940년대에 북한으로 수입된 스탈린식 공산주의는 어떤 점에서 장점이 있었을까? 내 의견으로는 교육, 특히 초등교육의 대중화를 그 성과로 들 수 있을 듯싶다.

스탈린 시대, 대중교육은 활성화

19세기에 등장한 초기 공산주의는 낙관적인 미래를 절대적으로 믿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대중교육을 계급의식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봤을 뿐 아니라 인간해방의 중요한 형식으로 여겼다. 1900년대 초 공산주의 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계몽 이념을 굳게 믿고 교육을 통한 인간개량을 희망했다.

그래서 공산당은 러시아에서 정권을 잡자 제정(帝政) 러시아 정부가 소홀히 했던 교육, 특히 초등교육의 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세계적 경험에서 보면 초등교육의 경우에는 대규모 투자보다 국가의 정치적 헌신과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학교 시설도 있어야 하고, 취학 연령이 된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동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당시 러시아에서는 농민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가가 초등교육 의무화에 대한 법을 통과시키고, 이 법을 시행한 것은 교육 대중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탈린 체제 하의 무서운 경찰과 공산당의 감시 제도도 교육 부문에서는 권력을 악용하지 않고 선용(善用)했다.

1930년대 이후 소련은 취학 연령이 되면 아동에게 무조건 학교에 다닐 것을 요구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반동행위’로 규정되었으니, 농민들은 할 수 없이 애들을 학교에 보냈다.

또 문맹퇴치운동도 있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소련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1920년대 공산당은 교원, 대학생, 젊은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농민들에게 기초교육을 시켰다.

그들이 거의 무료로 일했기 때문에 이 대규모 프로그램은 국가 예산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공산당 정부는 1930년대 초 5년만에 문맹을 완전히 퇴치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이 과장된 측면이 있었지만 문맹자가 대폭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공업과 군사력 발전 위해 교육수준 높여

교육의 대중화를 위한 적극적 활동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없지 않았다.

첫째, 학생들은 일반교육을 받는 동시에 수령과 공산당을 찬양하는 사상교육도 많이 받았다. 즉 공산주의 교육은 선전(propaganda)의 성격을 많이 띠었던 것이다.
둘째, 공업 및 군사력 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인재를 필요로 했다.

이 두 가지 목적 중 후자는 훨씬 더 중요했다. 당시 소련의 교육 제도와 서구 제도를 비교해 보면 자연과학과 기술과목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컸다. 1949년에 개발된 핵무기, 1957년에 발사된 스푸트니크(Sputnik)인공위성은 이 부문에서의 성과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교육 대중화 정책은 오로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고보기는 어렵다. 이 정책은 공산주의의 역사적 기원, 즉 계몽주의적 사상과 관련이 있었다.

그 결과, 1950년대에 들어와 스탈린 체제의 소련이 비록 빈곤한 사회로 남아 있었지만 교육 수준은 놀라운 정도로 높았다. 당시 소련과 비슷한 국민소득을 가진 나라와 비교해보면 중졸, 대졸이 차지하는 비율이 몇 배로 소련이 더 높았다.

북한은 스탈린체제 수입, 전통적 교육 중시사상 접합

좋은 것, 나쁜 것 가리지 않고 스탈린의 소련을 모방했던 북한은, 여기에 덧붙여 교육을 중요시하는 전통까지 이어 받았다.

물론 북한은 물질적인 기반이 약하고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교육으로 시간을 낭비했고, 주체사상 때문에 의식의 왜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세계적 범위에서 못 사는 나라 중 교육수준이 제일 높다. 인구나 경제 규모로 보면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는 아프리카 동남부의 모잠비크다. 모잠비크는 북한의 2천3백만 명과 비슷한 1천9백80만 명이며, 일인당 GDP도 두 나라는 대략 1천여 달러로서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교육 부문에서 차이는 매우 크다. 모잠비크는 2003년 현재 문맹율은 인구의 절반 정도인 52%, 중학교 진학률은 11.5%에 불과하다. 북한은 문맹자가 거의 없고 중학교 진학률도 거의 1백%에 육박한다.

물론 이것은 공산주의 정치문화 때문만은 아니다.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 국가들은 오래 전부터 교육열이 높다. 그러나 소련식 교육 제일주의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다.

많은 한국 사람들처럼 필자도 ‘통일공포증’이 없지 않았다. 독일의 경험을 보면 60년이 넘는 분단으로 인해 통일한국이 직면할 어려움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위에 인용한 교육지표와 같은 통계가 희망을 준다고 생각한다. 비합리적인 경제제도나 테러 공포정치, 전례가 없는 개인 우상화 등에 불구하고, 지금 북한은 현대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됐든 중세의 농민들도 아니고 현대 세계에서 자라난 현대인들인 것이다.

식민지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910-1945년의 한국사회를 ‘왜곡된 현대성’의 사회로 묘사한다. 일제 식민지는 현대화를 왜곡시켰으나 현대화를 막지는 않았다. 북한도 비슷하지 않을까?

높은 교육수준, 통일공포증 해소에 일조할 것

스탈린주의 정권은 나라의 발전을 많이 왜곡시켰지만 현대화 과정을 정지시키지는 못했다. 1960-70년대 ‘한강의 기적’ 무렵에 한국은 과거에 왜곡되었던 기반을 고치기도 했고 또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면 통일 후에도 다시 한번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 왜곡된 것을 청산하고 쓸모 있는 것은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같은 사실은 이른바 ‘통일공포증’을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통일 후 북한 사람들의 재교육을 위해 노력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재교육은 집을 고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돈이 많이 들고 어렵긴 하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집을 짓는 것보다는 훨씬 쉽다.

아무래도 목탄차를 운행해본 북한이 소달구지만 몰던 사람보다야 좀더 쉽게 ‘소나타’를 몰 수 있지 않겠는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초빙교수, 역사학 박사

<필자 약력>
-구소련 레닌그라드 출생(1963)
-레닌그라드 국립대 입학
-김일성종합대 유학(조선어문학과 1986년 졸업)
-레닌그라드대 박사(한국사)
-호주국립대학교 한국사 교수(1996)
-저서 : <북한현대정치사>(1995) <스탈린에서 김일성으로>(From Stalin to Kim Il Sung 2002) <북한의 위기>(Crisis in North Korea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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