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과 바꾸는 ‘김정일의 강령적 지시’

▲ 봉수호 최동송 정치비서가 풀려나는 모습 ⓒ호주 일간지 헤럴드 선

13일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은 자신들이 감행한 해적행위와 정치적 사기 행위에 대해 공식 사죄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논평은 최근 봉수호 사건으로 북한 선원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면서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웠다.

봉수호 선원 석방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일뿐 북한이 저지른 행위가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선전활동에 열 올리고 있는 것이다.

요약

– 미국은 정상적인 무역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의 봉수호와 선원들이 마약밀매에 직접 관여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호주의 일부 불순세력을 사주해 배와 선원들을 강제 억류했다.

– 우리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는 마약의 남용과 밀매가 엄격히 금지돼 있으며 더욱이 화폐위조와 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해설: “김정일의 지시는 목숨과 같은 비밀”

봉수호는 헤로인 125㎏을 싣고 호주에 정박했다가 선원 31명이 체포된 사건이다. 그후 27명은 1년여 만에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선장 등 나머지 4명은 2년 10개월만인 지난 5일 풀려났다. 피고인들이 배 안에 헤로인이 실려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바 없으며, 호주 검찰측 주장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북한 변호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물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잘 활용했기 때문일까. 여하튼 필자는 그동안 봉수호 선원들이 얼마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만약 봉수호 선원들이 김정일(당)의 지시를 자백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가족, 친척들까지 민족 반역자, 반당분자 등 온갖 죄를 뒤집어쓰고 영원히 매장되었을 것이다. “김정일의 강령적 지시” 바로 그것이다.

이런 사실을 남한 국민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북한사회를 체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쉽게 이해하려면 마피아 조직들을 상상해보면 된다. 마피아 조직원이 배신하면 두목은 그를 기어코 제거하든가, 아니면 활동을 못하도록 손 발을 자르기도 한다. 김정일 체제도 그와 비슷하다. 아니, 더 악착같다. 연좌제에 따라 가족, 친척 등 친인척까지 말려 죽이기 때문이다.

마약을 판매하려면 운반책과 알선책이 있기 마련이다. 마약 밀매자들이 해당국가 경찰에 적발될 경우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지켜야 할 것이 뭘까? 바로 “김정일이 지시했다”는 증거를 없애고, 죽어도 두목(김정일)을 입 밖에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족들까지 죽기 때문이다.

1980년 말 북-러 국제열차 안에서 마약을 운반하다 러시아 경찰에 적발되자 운반책이 스스로 자살한 사건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 죽는 길을 택했다. 이번 봉수호 선원들 역시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을 것이다.

아마 김정일은 귀국한 봉수호 선원들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했을지 모른다. 비밀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법행위의 비밀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 북한주민들의 의무다. 다만 남한 주민들이 이런 사정을 너무 모를 뿐이다.

이번 조선중앙통신의 논평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 사정을 다 아는 필자로서는 너무도 뻔뻔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사정을 모르는 남한 국민들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이주일 기자(평남 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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