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선후보는 ‘北 개혁개방’ 시험문제 풀어야 된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최종목표는 모두 ‘통일’이다. 이승만 시기는 북진통일이었고, 박정희 시기 때 평화통일로 확정되었다.

이후 노태우 시기를 거치며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나왔고, 이 방안은 국회의 비준을 받았다. 김영삼 시기 때까지 남한의 대표성을 가진 통일방안이었다. 핵심 내용은 남북이 상호교류해서 북한에 시장경제와 다당제가 실현될 경우 통일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집어넣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고, 명확히 규정돼 있진 않지만 ‘흡수통일’을 의미했다.

그러다 김대중 시기 때 김씨 개인이 연구한 ‘3단계 통일방안’의 한 부분이 2000년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들어갔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식의 내용이다.

3단계 통일방안은 평화정착-평화교류-평화통일 방안이다. 여기에 통일 전 남북연합단계가 있다. 그러나 이 방안은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즉 남측의 대표성이 있는 통일방안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진영으로부터 계속 비판받았다. 게다가 북한이 핵실험국이 됐고, 평화체체 구축도 안됐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제1단계인 평화정착 단계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흡수통일 방안이든, 3단계 통일론이든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과거의 잣대로는 지금의 북한상황을 볼 수도 없고, 또 봐서도 안된다. 그런 식으로는 북한을 정확히 못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든, 3단계 통일방안이든 항상 전제가 있다. 어떤 통일방안이든’북한체제의 변화’가 전제되고 있는 것이다. 표현이 ‘개혁개방’이 됐건, ‘북한지역에 시장경제를 실시하고…’가 됐건 매한가지다. 다시 말해 북한의 변화가 없으면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인 평화통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은 비록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고 또 상당부분 남한 내부 정치의 정략적 선전 차원이 있었지만 그나마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낸다’는 야무진 꿈이라도 있었다.

盧 발언, 지난 60년간 대북정책의 역주행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후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은 자기 체제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진짜 권력자답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말은 ‘김정일이 자기 체제에 대한 소신도 분명하니까, 나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원치 않고 현재의 북한을 그냥 그대로 두겠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의 최종 목표는 평화통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접화법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니까, 노대통령이 ‘북한 개혁개방은 북한이 알아서 할일’이라는 말을 뱉는 순간부터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의 목표는 실종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이 10.4 선언에 나오는 이른바 ‘경협’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는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첫째는,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한다느니, 장기적으로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겠다느니 하는 말은 햇볕정책 이후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어차피 ‘말(言) 사기’에 불과하니까, 나 노무현은 지금부터 ‘정직’하게 장군님에게 갖다 바치는 것으로 하겠다는 뜻이다. 둘째는, 남북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사실 숨겨진 목적인데, 김정일을 의식해서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하지 못했다고 아주 선의로 한번 해석해볼 수 있다.

이 둘 중 도대체 무엇이 노대통령의 ‘숨겨진 진실’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 첫번째가 진실이라면 그는 흔히 하는 말로 ‘실성한 사람’이고, 또 두번째가 진실이라면 평양과 도라산에서 한 노대통령의 언행은 7천만 남북 주민들은 물론 10.4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을 다 속인 셈이 된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 발언이 ‘외교적 발언’이었다고 해도 문제다. 통상 면전에 대고 바로 하기 어려운 말을 외교적으로 둘러서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외교적 언사로서의 수위를 잘 조절하는 문제와 명백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외교적 발언이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발언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 시정잡배들의 거짓말과 하등 다를 게 없다.

그래서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정착,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체제의 변화, 그리고 국민합의를 통한 합리적이고 점진적인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북한문제-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노대통령에게 자신의 발언에 대해 분명한 뜻을 밝힐 것을 촉구해야 한다.

만약 그것을 밝히지 않는다면, 국민 세금으로 들어가는 대북지원 내지 경협은 백보를 양보해도 ‘대통령의 통치권한’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이적행위에 해당한다. 절대 어물쩡 넘어가서는 안되는 사안인 것이다. 국회는 대통령을 출석시켜 해명을 요구하고, 검찰은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야 하며, 언론은 사실관계를 파헤쳐야 한다. 아울러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의 분명한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노대통령의 발언은 그동안 잘됐든, 잘못됐든 지난 60년간 진행되어온 모든 대한민국 대북정책의 방향을 거꾸로 바꾼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북한체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 유일한 대북정책 관련 발언이 바로 노대통령의 발언이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잇겠다는 대선 후보들이 분명히 있는데, 이들도 그렇다면 북한의 변화를 전제하지 않는 대북지원 내지 경협에 동의하는 것인지, 반대하는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동영 후보는 개성공단 사업 행위가 그것이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한 사업인지, 아니면 김정일 수령독재정권을 돕는 현금지원 행위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개혁개방은 수학으로 치면 ‘인수분해’

북한 개혁개방 문제는 모든 북한문제를 풀어가는 첫 고리이자, 정책목표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수단이자 중장기적 목적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개혁개방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핵문제를 비롯한 다른 문제를 풀기 어렵다. 핵문제가 풀리면 개혁개방 문제도 풀리는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만에 하나 개혁개방 문제를 먼저 푸느냐, 핵문제를 먼저 푸느냐가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당연히 개혁개방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그것이 대북정책의 기본이다.

북한이 개혁개방하면, 그 개혁개방의 수준만큼 남한 및 주변국과 체제의 공통성이 넓어지고, 주변국과 체제의 공통성이 넓어지는 만큼 상호교류와 협력의 범위가 넓어지며, 상호교류와 협력의 범위가 넓어지는 만큼, 주변국과 갈등의 요인이 줄어들고 평화유지의 요인이 늘어난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한 미 일 등 주변국과 시장경제라는 체제 공통성이 넓어지면서 갈등 요인이 점차 줄어든 대신 상호교류와 협력의 범위는 더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개혁개방 하면 남북간의 갈등 요인이 줄어드는 대신 상호교류와 협력의 범위는 늘어나게 된다. 상호교류와 협력의 범위가 늘어나는 만큼 남북간의 체제의 차이성이 줄어들고, 체제의 차이성이 줄어드는 만큼 우리의 대북정책 최종목표인 평화정착-평화통일의 가능성은 더 늘어난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개혁개방 자체가 우리의 대북정책의 마지막 목표가 되기는 어렵지만, 북한이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북한주민들의 삶의 질 제고, 인권 개선, 평화정착-평화통일이라는 대북정책의 목표 달성도 어려워지는 것이다. 즉 대북정책의 최종목표를 무엇으로 잡든, 거기에 접근하려면 북한의 개혁개방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문제를 수학문제로 친다면 ‘개혁개방’은 기본 중의 기본인 방정식이나 인수분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문제를 먼저 풀지 않으면 평화정착-평화통일이라는 고난도의 미적분은 도저히 풀기 어렵다. 아무리 북한문제에 무식한 사람이라 해도 이런 문제는 기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 나서는 모든 후보들은 자신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개혁개방을 전제로 하는 정책이냐, 아니냐에 대해 분명하게 밝혀야 하고 또 유권자들은 이를 요구할 권리를 당연히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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