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으로 수류탄 막은 병사가 ‘혁명의 적’?

▲1986년 3월북한1211고지동쪽능선의 351고지의북한군(나무밑에서 밑으로 바라보는 병사가 이정연씨다)

나에게는 북한에서 군 생활 중 겪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1988년 남한에서 한창 올림픽 열기가 고조됐을 때였다. 내가 동부전선에 근무하던 때 인민군 민경초소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고요한 휴전선의 동이 트는 아침. 전날 잠복근무에서 철수한 잠복조원들이 지붕이 덮여 있는 병영 마당에 정열했다. 소대장이 대열 점검을 마치자 병사들이 무기 및 수류탄 검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근무 내내 내린 이슬비에 젖은 잠복조원들은 절반은 잠에 취해 있었다. 병사들이 탄창을 뽑아 소총의 격발상태를 확인하고 수류탄검사를 할 때였다. 소대장과 잠복조장(분대장급)이 조원들의 무기 상태를 검열하는데, 맨 마지막에 정열한 상등병(상병)이 탄창주머니 옆에 붙어 있는 수류탄 두 발을 꺼내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원체 주머니가 작아 수류탄이 빡빡하게 들어간 데다 이슬비에 젖은 탄창주머니에서 잘 빠져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수류탄은 이미 안전클립이 제거된 상태였다. 그 상등병은 안전핀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수류탄을 그대로 뽑고 있었다. 수류탄은 빠지지 않고 안전핀만 빠졌다.

이와 동시에 ‘탁’ 하는 예리한 뇌관 점화 소리가 났다. 소대장과 조장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조원(병사)들은 한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긴급 조치가 필요한 상태였다.

영웅적 희생이 ‘기획된 사고’로 밝혀져

순간 안전고리를 뽑은 상등병이 탄창주머니를 잽싸게 벗어 땅에 던진 다음 수류탄위에 철갑 모(철모)를 덮고는 그 위에 엎드렸다. 밀폐된 마당에서 안전핀이 뽑아진 수류탄을 달리 처리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꽝’ 소리를 내며 수류탄이 터졌다. 상등병은 그 자리에서 내장이 파열돼 목숨을 잃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소대장과 잠복조장, 구대원(고참)들도 어쩔 바를 몰랐던 그 몇 초 사이에 사고를 일으킨 상등병은 준비된 동작으로 탄창주머니를 벗어 던지고 그 위에 철갑 모로 덮고 엎드려 주변의 동료들을 안전하게 지킨 것이다.

부대에서는 병사의 영웅적인 행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수로 안전핀이 빠진 수류탄을 온 몸으로 막아 동료를 구한 행동은 영웅적이라고 칭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군단에서 즉시 사고조사단이 내려왔다.

그런데 얼마 후 사고 조사를 위해 내려온 군단 조사단에서 이상한 소문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고를 일으켰던 소대가 통째로 민경초소에서 후방으로 쫓겨났다. 또 전우들을 살리려고 수류탄을 철갑 모로 덮고 죽은 상등병이 혁명의 원수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죽은 상등병은 장례식도 없이 부대 주변 이름 없는 야산에 묘비 하나 없이 매장됐다.

후에 전해들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 사고는 죽은 상등병이 사전에 철저히 기획한 것이었다. 그는 민경초소에서 가끔 발생하는 수류탄사고 시에 동료들을 구하려고 자신의 몸을 던진 영웅들을 부러워했다고 한다.

자신도 수류탄을 온 몸으로 막은 뒤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영웅이 되어서 크게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는 주변 동료들에게 수류탄 폭발의 위력에 대해 물었고, 방탄헬멧을 덮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문제의 상등병은 방탄헬멧을 덮고 그 위에 엎드리면 자신은 살 줄 알고 기획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북한군 내에서 과도한 충성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낸 너무도 어이 없는 헤프닝이었다.

그 사고를 전해들은 나는 어린 나이에 군 생활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그랬을까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다.

이정연/북한군 정찰부대 출신(98년 입국), ‘북한군에는 건빵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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