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내내 이어진 북한과 미국 간의 ‘말폭탄’ 대결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최고조로 치달은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미북 간 치킨게임 양상이 한풀 꺾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북 양국은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 이후 서로를 향해 ‘괌 포위사격’ ‘군사적 옵션’ 등을 거론하며 군사 충돌에 대한 위기감을 높였다. 그러다 지난 주말 이뤄진 미중 정상 간 전화통화를 계기로 미북 간 격렬했던 공방들도 다소 추줌하는 양상이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발 발언 자제’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대화를 통한 출구 모색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이날 통화는 시 주석이 먼저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이 미북 대치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에 있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려 한 것이란 풀이가 나오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통화에서 “핵 문제 해결은 ‘대화와 담판’이라는 큰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면서 미북 양국이 긴장을 고조시키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대북 특사를 파견하는 등 한껏 고조된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연일 대북 초강경 발언을 내놓던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 ‘도발 발언 자제’에 의견을 같이 한 것 역시 유의미하다는 평가다. 비록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와 담판’을 강조한 시 주석에게 ‘북한의 도발 중단이 우선’이란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시 주석과의 통화 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평화적 해법’을 나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북한과 마냥 ‘강대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진 않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미북 간 물밑 대화가 수개월 간 비밀리에 이뤄져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조지프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박성일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차석대사가 수개월 동안 ‘뉴욕 채널’을 가동해왔다. 북한이 추가 도발 없이 8월 위기를 넘기면 미북 간 국면 전환이 이뤄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지난 주말을 기해 한반도가 국면 전환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994년, 2002년, 2009년 당시 북미 간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도 극적으로 대화의 물꼬가 터졌던 것처럼,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되레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물론 북한의 ‘말폭탄’을 마냥 엄포로만 받아들인 채 섣불리 국면 전환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 북한은 “괌 포위사격을 인민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면서 대미 적대감 고조를 통한 내부 결속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강경 대북 발언과 국제사회 대북제재, 이번 달에 있을 한미연합군사훈련 등을 빌미로 삼아 북한이 전략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의 대북 레버리지가 북미 간 대치 상황을 중재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2371호 채택에 동참하고 이미 결의 이행 단계에 착수한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킬 만한 카드를 중국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아직까지 위협 수위를 높이는 북한을 겨냥해 이렇다 할 메시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 출범 이래 줄곧 북한에 대화를 제기해온 현 정부로서는 북한이 대화 호응은 커녕 ‘미 본토타격’ ‘서울 불바다’ 등을 주장하고 나서자 상당히 난처해하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1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직후에도 “북한이 올바른 여건 형성되는데 협조하고 대화 테이블로 나오겠다고 하는 뜻이 있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협조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대화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을 피력하는 데 그쳤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대화든, 충돌이든 미국과 하겠다는 ‘통미봉남’ 전략을 버리지 않으면서 미북 간 강대강 대치 국면에서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됐다. 앞서 문 대통령도 지난달 11일 G20(주요 20개국) 회의 참석 후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합의를 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라며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국면에서 8·15 경축사에서 문 대통령이 새로운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 지가 주목된다. 도발 중단과 대화 호응을 촉구하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할지, 혹은 한반도 긴장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또 다른 카드를 들고 나올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한편 한미 군 수뇌부는 14일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은 이날 오후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이순진 합참의장과 각각 만나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과 북한군 동향을 살피고,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을 협의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