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北과 무비자협정 폐기…리정철은 ‘증거 불충분’ 석방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당국이 용의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를 본격화하고, 각종 음모론을 주장한 북한과의 외교 관계도 재검토할 전망이다.

우선 말레이 검찰은 2일 북한 국적 용의자 중 유일하게 체포된 리정철을 석방한 후 추방하겠다고 밝혔다. 모하메드 아판다 말레이시아 검찰총장은 이날 기자들에게 “리정철이 김정남을 독성 신경작용제 VX를 이용해 살해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해 석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정철의 구금 만료일은 3일이다.

앞서 리동일 전 유엔 대표부 차석대사를 포함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은 28일 오후 김정남 사건 관련 논의를 위해 말레이를 찾은 바 있다. 당시 리동일은 북한 대사관 앞에서 기자들에게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된 북한 시민(리정철)의 석방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말레이 당국의 리정철 석방 결정에 북한 대표단의 요구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다. 세리 수브라마니암 말레이 보건부 장관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말레이시아) 내각 인사들이북한 대표단을 만난 건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북한에) ‘말레이시아의 룰을 따르겠다’고 답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반드시 응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다만 말레이 당국은 끝내 리정철이 김정남 암살에 가담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리정철은 수사 기간 내내 본인은 공항 CCTV에 찍히지 않았으며, 범행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또 용의자들이 리정철 본인의 차량을 사용해 이동한 데 대해서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답했다.

대신 김정남에 직접 독극물 공격을 한 여성 용의자들에 대해선 ‘사형’이라는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짙어졌다. 말레이 당국은 1일 베트남 국적 도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이날 검찰이 공개한 기소장 말미에는 “유죄 확정 시 고문을 가한 뒤 사형에 처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여기서 ‘고문’은 교수형에 해당한다는 게 현지 경찰의 설명이다.

기소장은 또 말레이시아 형법 302조에 의거해 구형하겠다고 밝혔다. 형법 302조는 ‘의도를 갖고 살인한 자에 대해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두 용의자들에 대한 첫 공판은 다음달 13일 샤 알람 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한편 말레이 정부는 북한 정권을 상대로는 비자면제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북한이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사실상 단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말레이 국영 베르나마 통신은 2일 아흐마디 자히드 하미디 부총리의 발언을 인용, “말레이 정부가 북한과의 비자면제협정을 6일자로 파기한다”면서 “국가 안보를 위한 선택”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향후 북한 주민은 입국 비자를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만 말레이에 입국할 수 있다. 해당 조치가 양국 간의 단교로 이어질 것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이제까지 유지해온 우호적 관계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와 북한은 지난 1973년 수교를 시작했으며 2003년에는 평양 주재 말레이 대사관을 설립했다. 2009년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한 뒤에는 약 100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말레이에 파견돼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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