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지상 권력 휘둘러 온 김정일은 누구였나?

세계 최장기 독재자로 악명(?)을 날려온 김정일이 17일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정일은 북한 정권을 수립한 김일성의 아들로 태어나 치열한 후계 경쟁 과정을 거쳐 40여년 가까이 북한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김정일의 권력 장악과 일인 지배 과정은 북한의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1994년 7월 열병해있는 군대를 향해 박수치는 김정일./연합

김정일은 22세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북한 정치에 뛰어들었다. 이후 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선전선동담당비서·조직지도부장→당중앙위 정치위원 등을 지내면서 실무 감각과 경험을 쌓았다.


1973년에는 ‘3대혁명 소조운동’을 조직해 노동당 전반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자신의 측근세력과 친위부대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군사위원회 위원으로써 공식적인 후계자 행보를 시작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국방위원장, 당 총비서 등의 직위에 올랐다. 이후 북한 최고 권력자로 지위를 다졌던 그는 1994년 김일성 사후 북한의 제1인자로 국내외에 공식화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김정일은 2008년 여름 뇌졸중을 겪고 쓰러지며 위기를 겪었다. 이후 병세가 나아지기도 했지만 건강 이상 등의 영향으로 후계 승계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2010년 9월에는 44년만에 당대표자회를 개최해 자신의 셋째아들인 김정은으로 후계자를 공식화했다.


한편, 북한 정계에 진출해 지위가 상승할수록 김정일을 지칭하는 수식어도 다양해졌다.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올라선 32세 때는 ‘당중앙’으로 불렸고, 이어 ‘유일지도자’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등의 호칭이 붙었다.


1983년께 중국을 비공식 방문해 중국 실권자들과 회담을 할 때는 ‘영도자’ ‘최고 사령관’등의 새로운 호칭이 생겼고, ‘백두광명성’ ‘향도성’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91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에 등극할 때는 ‘또 한분의 걸출한 수령’으로, 1993년 국방위원장으로 올라설 때는 ‘민족의 어버이’ ‘인민의 지도자’라고 불렸다.     


김정일은 특유의 권력욕으로 김일성의 권력을 대체해갔으며 이 같은 수많은 칭호들은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의 방편으로 이용됐다.


김정일은 특유의 선전 능력과 권력 장악능력으로 삼촌인 김영주를 제치고 후계 구도에서 우위를 차지, 북한 차기 통치자로 올라섰다. 김일성의 ‘적통’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해 자신의 생년도 바꿨다. 1941년 출생인 자신의 생년 끝자리를 김일성이 태어난 생년(1912)과 맞췄다.


또한 출생지도 러시아 연해주 하바로프스크 근교 브야츠크 소련 극동군 정찰부대 제88여단 밀영에서 백두산 항일유격대 밀영 귀틀집으로 바꿨다. 북한 주민들에게 지도자로서의 상징성을 대대적으로 알리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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