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태풍 ‘하이선’ 북상에 북한 당국이 함경북도 해안 지역 주민에 긴급 대피령을 하달한 것으로 7일 전해졌다. 연이은 태풍으로 막대한 재산 및 인명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북한도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날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어제(6일) 밤 11시 당(黨) 중앙위원회 정무국에서 갑자기 피난 지시가 내려왔다”면서 “함경북도 해안 및 피해가 예상되는 모든 지역의 인가(人家)를 오늘(7일) 오전까지 대피시키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5일 제9호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남도에서 노동당 정무국 확대 회의를 열고 피해 상황을 점검한 바 있다. 조선중앙TV 등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은 주민들을 안전지대로 이동시킬 계획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긴급 대피령은 김 위원장의 지시 이행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
소식통은 “대상 인원을 내륙 지역이나 안전한 공공건물로 이동하라는 점도 강조됐다”면서 “필요할 경우 전시 방공호도 이용해도 좋다는 방침도 하달됐다”고 덧붙여 소개했다.
전시 방공호까지 주민들 피난용으로 개방했다는 점에서 이번 긴급 대피령이 북한 최고사령관인 김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당국의 긴급 조치에 따라 도, 시, 군당에서는 12시간 철야 전투를 조직했고, 또 해안가 및 피해 예상 구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직사업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아울러 시간대별로 피난 및 피해 상황 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에 대해 그는 “도당 측은 함남도, 강원도 책임 간부들이 목이 떨어진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번 중앙 통보를 무조건 집행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당 정무국 확대 회의에서 함경남도 당위원장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임명했다. 또한 3일 김재룡 전 내각총리(현 조직행정부장)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는 강원도와 원산시 간부들의 처벌 문제가 결정됐다.
김책·청진 등 1만 6천여 주민, 초상화 들고 급히 피난…”전쟁난 것 같았다” |
소식통에 따르면, 필히 안전지대로 대피해야 하는 주민은 함경북도 김책, 화대, 어랑, 청진 등 주민 약 1만 6천여 명으로 예상된다.
소식통은 “정무국 지시문 집행에 따라 우선 제 1피해 지대로 정한 김책, 화대, 어랑, 경성, 청진 등 해안가 반경 10킬로 이내 거주 주민들은 반드시 피난을 가야 한다”며 “제 2피해 지대로 지정된 회령, 온성 등은 피난은 가지 않고 중층아파트나 건물들에서 안전대책을 세우고 대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제 2피해지대로 지정된 지역의 안전대책은 시, 군, 당, 행정, 사법 일꾼들이 총동원돼 점검할 예정이라는 게 소식통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피난 지역으로 지정된 주민들은 밤새 안전지대로 대피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도(道)에서 초상화와 집에 둔 돈, 며칠 분의 식량 정도만 가지고 나오라고 강압했다고 한다”면서 “이삿짐을 다 날라줄 차도, 연유(燃油)도, 시간도 부족해 마치 전쟁난 것처럼 정신없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함북 해안가 사람들과 기관기업소 모두 한잠도 못 자고 어디론가 옮겨간 셈”이라면서 “다만 피난민 중 일부 노인들이 죽어도 집에 있겠다고 해 당 일군(일꾼)이 애를 먹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긴급 피난 지시는 재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잠재우고, 향후 선제적 조치를 대대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소식통은 “함경남도나 강원도에서 엄청난 피해를 받았고, 이에 국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에 별다른 조치를 안 하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후 당의 선견지명으로 피해가 적었다는 식의 선전도 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같은 동해안에 속한 강원도나 함남 지역은 이번 필수 피난 지역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소식통은 “이 지역은 더 피해를 볼 것도 없이 완전히 폐허가 됐기 때문”이라면서 “다만 강원도나 함남엔 ‘바닷가 통행 금지’ ‘복구 전투 중지’ 지시가 하달된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