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해외판매 위축…북 주민이 소비자로 등장

▲ 마약흡입기로 마약을 흡입하려는 장면 ⓒTV아사히

불과 6, 7년 전까지도 북한내 마약은 극히 일부 고위 간부들과 화교처럼 돈 많은 특권층 사이에서 은밀히 유통됐다. 북한에서 생산된 아편이나 헤로인 등은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로 판매됐다.

북한은 국가차원에서 마약을 생산하고 수출한다. 북한 선박이나 외교관들이 마약 운반이나 판매 혐의로 제3국에서 적발되는 사례는 허다하다. 우리 정부는 1998년 북한의 외화조달 내역 가운데 마약밀매 등 불법행위를 통한 외화벌이가 1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1970년대부터 소규모로 은밀하게 시작된 북한 당국의 마약사업은 1992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의해 사실상 국가적 공식사업으로 부상하며 본격생산이 시작되었다. 같은 해 8월 김위원장은 양귀비 재배사업을 ‘백도라지 사업'(White Bellflower)이라 명명했다.

또 100만 달러 이상 마약을 판매하는 사람에게 ‘백도라지 영웅’ 칭호를 부여하면서, “외화획득을 위해 아편을 대대적으로 수출하라”고 지시했다(1998년 11월 6일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자료). 북한 마약생산공장으로는 청진의 나남제약공장과 함흥의 흥남제약공장이 유명하다.

먹고 살기 바쁜 일반 주민들에게 고가의 마약은 일부 특권층의 탈선행위 정도로 여겨졌다. 북한 당국도 외화벌이 이외에 마약을 유통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단속했기 때문에 이를 돈벌이로 삼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국가배급 붕괴된 후 마약판매도 확산

그러나 식량난은 북한의 마약 생산과 유통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국가가 배급을 책임진 계획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돈벌이가 시원찮은 북한에서 그나마 돈냄새가 풍기는 곳은 시장이다.

장마당과 종합시장 활성화는 도시주민들에게 그나마 생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했다. 또 살아가는 데는 돈이 최고라는 인식을 배우게 됐다. 주민들은 뭉칫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그 틈새를 마약이 파고들었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마약은 필로폰과 헤로인이다. 필로폰 생산의 중심지는 함경남도 함흥이다.

함흥은 화학 부문과 관련된 회사가 많기로 손꼽히는 북한 내 화학공업종합기지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곳이 2·8비날론연합기업소(구 본궁화학)이다. 그 외에 흥남 비료공장, 흥남 제약공장을 비롯하여 북한 최고의 화학연구사 배출기지인 함흥화학공업종합대학(5년제)이 있다.

함흥이 필로폰 생산 중심지가 된 이유

비날론기업소의 원료는 홍원군 운포광산의 석회석이고, 흥남비료공장의 원료는 허천군의 부동과 만덕 광산의 유화철로 충당된다.

이런 이유로 함흥에는 화학 관련 연구사들과 종사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문제는 식량공급이 끊기고 먹고 살기 힘들어 지면서 이들이 필로폰 생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실험실과 원료만 있으면 질 좋은 필로폰을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다. 특히 북중무역이 활성화되고 북일무역이 큰 제약이 없던 2000년대 초반에는 필로폰에 대한 외부 수요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함흥주민 최명길(가명) 씨는 “초창기에는 무역업자들이 연구사들에게 원료와 자금을 제공하면, 연구사들은 질 좋은 필로폰을 만들어서 이윤의 절반을 나눠가졌다. 가난한 연구사들이 돈이 어디 있나? 무역업자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주문 받아서 파니까 만들었다. 또 뇌물로 보안서나 보위부 입막음까지 다 해놨는데 무서울 것도 없다. 돈이면 못하는 것이 없는데 그렇게 큰 돈벌이를 마다할 연구사들이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최씨는 “필로폰은 북한에서 원가가 1kg당 3천 달러에 불과하다. 이것을 팔면 앉은 자리에서 6천 달러를 받을 수 있다. 제조된 필로폰을 중간 거래상에게 넘길 수도 있고, 직접 신의주로 들고가 판매상에게 넘기면 9천 달러에서 1만 달러까지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원 함흥분원 연구실에서 일하는 내 친구도 가난하게 살다가 필로폰 만들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 나도 그 친구 신세를 지고 있다. 함흥에 필로폰 만들어 부자 된 사람 많다”고 했다.

결국 북중무역상들이 중국에서 원료를 들여오면 함흥 화학연구사들이 필로폰을 제조하고, 무역상인들이 이것을 중국으로 가져가 판매한다. 이 과정에 중국 범죄조직이 직접 개입하기도 한다.

중국정부, 북한 마약생산공장 폐쇄 요구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라파엘 펄 연구원은 최근 북한산 마약 제조 및 거래에 중국의 범죄조직이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장사를 통해 큰 돈을 모은 신흥부자들이 속속 생기면서 상당량이 내부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북한 광물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북중무역업자 김명국(가명) 씨는 광물(정광)을 받기 위해 함흥에 자주 출입하고 있다. 현재 김 씨는 중국측 업자를 만나기 위해 단둥시에 나와있다.

김 씨는 “필로폰은 함흥에서 나온 것을 제일 알아준다. 평양, 신의주, 청진에서는 함흥산이라면 가장 신뢰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른 업자로부터 함흥산 필로폰을 거래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오죽하면 중국 정부가 함흥 마약공장을 단속하라고 요구해서 북한 당국이 일부 폐쇄조치를 했겠는가. 이제 함흥이 마약생산중심지라는 사실은 북중무역업자 치고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북한마약이 대량 유입되자 북한당국에 마약 생산공장으로 함흥 흥남제약공장을 지목해 공장 폐쇄를 요청했고, 올해 초 북한 당국이 이를 받아들여 흥남제약공장의 실험실과 공장을 일부 폐쇄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수출 막히면서 대거 북한 내에서 판매돼

현재 신의주에서는 함흥 필로폰이 1kg당 9천달러~1만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마약판매상들은 이를 중국에 들여와 3배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중국 마약상들에게 되팔고 있다.

그러나 북한산 마약의 해외 판매는 전반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 PSI 등 국제 감시망이 강화돼 마약 수출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북일관계도 악화되어 북한산 마약판매 감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단둥시에서 북한과 무역을 하는 조선족 무역업자 김종만(가명) 씨는 “북한이 일본과 관계가 안좋아 무역을 막기 전까지는 일본에 많이 판매한 것으로 안다. 일반 무역선을 통해 일본의 야쿠자들에게 높은 가격에 거래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일 관계가 악화되면서 일본으로 나가던 마약판매 선이 대부분 막혔다고 한다. 또 중국정부도 최근 마약과의 전면전쟁을 선포하면서 단속과 검색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최근 이례적으로 마약사범들에 대한 재판과정을 중국의 CCTV로 생중계하면서 마약사범에 대한 강한 단속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 씨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 나오는 북한산 마약도 1, 2년 전과는 많이 줄어든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다른 무역업자들도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국 해외 판매루트가 막히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북한 내부에서 마약 판매가 대량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북한은 마약생산과 소비 분야에서 전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국가가 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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