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죽음에 박정희와 김일성이 생각나는 이유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리콴유를 기억하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리콴유 전 총리의 죽음을 애도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있다. 그의 업적을 떼어놓고 오늘의 싱가포르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독립할 당시만 하더라도 싱가포르의 존재감은 없었다. 분리된 싱가포르가 앞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다인종. 다문화로서 싱가포르의 정치·경제적 불안감은 더해갔다. 급진 공산주의자를 비롯하여 각양각색의 정치세력의 난립은 싱가포르의 국가전망을 어둡게 했다.


그러나 리콴유 전 총리는 원칙과 유연한 정치를 시의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불안하던 싱가포르의 미래를 서서히 바꾸어 갔다. 1959년 총선에서 그가 이끌던 인민행동당은 51석중 43석을 승리로 이끌며, 싱가포르의 첫 총리가 된다. 31년 동안 집권하는 동안 그는 싱가포르를 조그만 어촌(漁村)에서 세계적인 물류. 금융.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그 위상을 바꾸어 놓았다.


리콴유 전 총리를 생각할 때마다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함께 생각난다. 언 듯 보기에도 두 인물은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장기집권이다. 두 인물은 각각 31년과 17년 동안 집권을 했다. 두 번째는 경제발전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지도자라는 인식도 같다. 가난했던 싱가포르와 한국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인물은 가난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것을 그 어떤 정치적 이념보다도 우선시 했다.


정치적 경쟁자들은 두 인물에 대해서 정치적 권위주의자, 독재자라고 비판했지만 국민들은 경제를 우선한 권위주의 정권을 옹호하고 지지했다.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시아의 4마리 용(龍)으로 불리던 국가 중에 싱가포르와 한국이라는 용(龍)을 이끌었던 지도자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공통점이 많아서인지 신장은 리콴유 전 총리가 훨씬 크지만 근엄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 표정도 비슷해 보인다. 


리콴유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의 국가지도자가 있다. 리 전 총리와 박 전 대통령의 집권 동시대에 한반도 이북을 집권한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이다.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까지 총 49년을 집권했다.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을 집권했다. 김정일의 집권기간은 17년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같다. 김일성의 49년 집권은 따라갈 자가 없다. 그러나 장기집권이라는 것만 같을 뿐 이외 공통점이 하나도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리더십을 보였다.


싱가포르와 한국의 정치지도자가 장기집권을 통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쾌거를 이룩했다면 북한의 장기집권자들은 국민들에게 배고픔과 굶주림을 선물했다. 김일성의 북한은 정치·경제적 평등을 지향했던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열정을 장기독재의 토대로 삼았다. 리 전 총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명암이 엇갈리는 반면 북한의 김 부자는 경제발전은 고사하고 독재통치에서도 따라갈 자가 없다. 싱가포르와 한국은 가장 개방화된 국가에서 경제적 풍요와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북한은 가장 폐쇄적이면서 경제적 빈곤과 정치적 억압에서 살고 있다.


1965년 싱가포르와 1945년의 해방된 조선, 그 후의 전쟁과 분단으로 황폐화된 한국과 북한은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지독한 가난과 체제 불안, 국가의 미래는 막막했다. 그러나 반세가기 훨씬 지난 지금 두 개의 국가와 한 개의 국가인 북한의 차이는 극명하다. 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의 죽음 앞에서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된 리콴유, 박정희, 김부자(父子)가 생각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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