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릭터 “우리방송 듣고 탈북하는 북주민들 보며 보람느껴”

RFA 설립책임자로 지금까지 이 방송을 이끌어온 리처드 릭터 회장이 지난 29일 퇴임했다. 그는 이날 1시간 30분 동안의 인터뷰에서 “RFA는 객관성과 공정성, 정확성 등 언론으로서 최고규범을 지켜왔고, 그를 통해 신뢰를 얻은 것을 가장 큰 성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탈북자들의 얘기,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직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듣고 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RFA는 생명줄이다.”(한 탈북자의 편지)

“우리 사회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사상·문화적 침투책동과 심리 모략전. 아시아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비열한 놀음.” (북한 노동신문)

‘RFA’(Radio Free Asia)는 1996년부터 미국 워싱턴 DC에서 제작·송출되는 라디오 단파방송이다. 동아시아의 소위 ‘비(非)민주국가’들을 상대로 한다. 북한과 중국·미얀마·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6개국의 9개 현지언어로 제작돼 위성을 타고 동아시아 전역에 뿌려진다. 이 방송은 한편에서는 ‘희망의 등대’, 다른 한편에서는 ‘실질적 내란선동’이란 평가를 받는다. 탈북자들 중에는 이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거나 바깥 세상에 눈을 떴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많은 이들은 RFA의 목적이 미국의 목소리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것으로 본다.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가 방송하는 그 나라의 뉴스를 그 나라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데 있다. 정부의 언론통제와 검열로 자기 나라의 일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나라의 얘기를 전하는 것이지, 미국 뉴스를 전하는 게 아니다. 이들 나라에 없는 자유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RFA는 미국 정부의 한 기관인가.

“법으로 설립됐고 의회의 예산지원을 받지만, 정부를 위해 일하지 않는 비영리 민간법인이자 독립된 방송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정부의 선전도구가 아니다. 나는 RFA 설립 책임을 맡았을 때부터 그 점을 분명히 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그러나 RFA가 미 정부의 선전기관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도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성취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 베트남 정부로부터도 많은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으로서 신뢰와 존경을 얻었다. 한국의 통신사를 비롯해 많은 언론들이 이제 RFA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우리 뉴스 보도를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본다.”

―RFA의 방송은 사실상 내정간섭, 반란선동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것은 결코 우리의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에게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를 적시에 전해주는 것이 임무이지, 그 나라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해서는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북한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방송은 매일 자정~오전 2시, 오전 6~8시 등 하루 4시간씩 방송된다)

“이제 많은 북한 사람들이 우리 방송을 정기적으로 듣고 있다고 알고 있다. 정확한 조사는 불가능하지만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전해듣는 얘기다. 우리는 직접 라디오를 공급하지 않지만, 중국 등을 통해 많은 라디오가 들어갔다. 우리의 노력은 아주 서서히이긴 하지만 북한이 외부세계에 문을 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종의 미국식 민주화인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민주주의를 강요하고 설교하지 않는다. RFA는 미국의 방송기관으로서, 이 나라 방송의 규범과 미국 언론의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 방송과는 다를 수 있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유엔헌장 등 보편적 규범의 원칙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RFA 외에 ‘미국의 소리(VOA·Voice Of America)’도 방송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가.

“미국의 소리는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기관이며 소속원은 연방정부 고용원이다. 또 국제뉴스를 방송한다. 우리는 연방정부 고용원이 아니며, 대상국가의 뉴스를 방송한다.”

―작년 북한인권법은 RFA의 대(對)북한 방송을 하루 12시간으로 대폭 늘리도록 했는데.

“법은 그렇지만 의회가 예산을 배정해 주지는 않고 있다. 나는 지금처럼 하루 4시간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방송을 늘리더라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게 될 것이고, 북한에 대한 더 많은 시간을 채울 뉴스거리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RFA는 그렇다면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기구인가.

“방송이사회(BBG)의 통제를 받는다. 이 이사회는 미국의 소리, 자유아시아방송, 쿠바방송국 등 국제방송을 감독하는 기구다. 놀랍겠지만, 나는 한 번도 방송이사회나 정부로부터 방송 내용과 방향에 대해 전화를 받거나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 누구도 우리의 방송 내용에 대해 통제하지 않는다. 방송이사회는 일종의 방화벽이다. 의회나 정부가 우리에게 간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어장치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언론인 출신과 저술가 등 9명으로 이뤄진 비상임·초당적 기구다.”

―북한에 대한 전파중계를 한국에서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 그런가.(RFA방송은 사이판섬과 몽골 등지에서 중계된다)

“한국에서 방송할 수 있다면 많은 이점이 있을 것이다. 과거 KBS와 한 종교방송에 우리 방송을 중계해줄 수 있는지 문의한 적이 있다. 그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한국에서 남북관계는 미묘하고, 외국 방송이 북한 내부의 상황에 대해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방해전파도 상당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중국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전파방해를 한다. 중국 정부는 아시아 국가들에 우리 방송을 중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어왔다. 예컨대 우리는 대만과 필리핀 내에 있는 미국 시설도 우리 방송중계를 위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도 우리 방송 주파수를 방해하곤 했으나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전파방해에는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시설을 전파중계에 이용하는 것은 어떤가.

“우리는 미군과 아무 관계가 없고, 결코 그런 일도 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정부의 선전기관으로 비칠 뿐이다.”

―오랫동안 북한내부 문제를 보아온 언론인으로서, 북한주민들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가 북한 주민들의 상황, 인권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이것은 회피할 수 없는 것이고 단순한 문제다.”

■ 리처드 릭터는

리처드 릭터(Richard Richter·75) 회장은 평생을 신문과 방송에서 보낸 언론인이다. 대학 시절인 1949년 뉴욕타임스 학생기자를 시작으로, 뉴욕 월드 텔레그램, 더 선 등에서 신문기자로 뛰었다. RFA방송을 시작하기 전 25년간은 ABC·CBS·PBS의 책임·중견 프로듀서로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ABC의 간판 아침뉴스 프로인 ‘굿모닝 아메리카’를 처음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이 시대 언론인의 가장 중요한 자세에 대해 “한마디로 정직성(integrity)”이라며 “객관적 보도에 결코 자신의 견해를 섞어 쓰지 않아야 하고, 허구와 상상으로 만들어진 뉴스를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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