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석의 일기⑤] “리스에서 맞은 명절”

▲ 야반도주하는 남매

도착한 곳은 ‘리스’라는 마을이었습니다.

거기서도 조선족 사람의 집에 반 달가량 신세를 졌습니다.

우리 남매는 처음에는 같은 집에 있었는데 나중에 근처에 사는 할아버지가 희선이를 귀여워하셔서 집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며 지냈습니다.

반 달가량 지나니까 구정 명절이 되었습니다. 큰 도시로 일하러 갔던 자녀들과 친척들이 모여들어 내가 있는 집이나 선희가 있던 집은 갑자기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우리들은 젊은 부부의 간난 아기를 데리고 놀았고 어른들은 트럼프를 치며 무척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식탁에는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요리들이 많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나에게 자꾸 더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내가 놀란 표정을 하고 있으니까 중국에서는 구정 1일이 1년 중에 제일 화려하고 즐거운 명절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있던 북조선에서도 구정 1일은 명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일 화려한 명절은 아니고 조촐하게 지낼 뿐입니다.

그 대신 4월 15일 김일성의 생일날에는 ‘민족의 명절’이라고 하여 온 시가지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장식들로 가득 차곤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고기와 과자 배급도 나왔습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니까 집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해지면서 “옛날 일은 잊어버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더 먹으라고 다시 권했습니다.
나는 배도 불렀지만 그 집 사람들의 따뜻한 정에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간 있으니까 우리들의 일이 마을 전체에 퍼져서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에 도취되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얼마 있지 않으면 경찰이 찾아올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와서 나나 선희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다. 친척네 아이들이라고 뭐라고 말해 놓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계셨지만 우리들은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이나 붙잡혔던 적이 있어서, 희선이와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여기를 떠나서 잠시동안 다른 곳에 있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자고 의논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집사람들 모르게 몰래 빠져나와 희선이의 손을 붙잡고 ‘리스’라는 마을을 떠났습니다.

집사람들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했다가는 나가지 않아도 된다며 붙잡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가고 싶어서 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붙잡히면 또 오랫동안 머물게 되어 점점 더 이별하기 힘들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가 우리들을 발견하고 붙잡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나의 이런 기분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무리하게 잘 쓰려고 생각하다가도 곧 그런 나 자신이 싫어지곤 합니다.

The DailyNK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