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위기 김정일, 우방외교로 탈출구 찾나

5월 방중(訪中) 이후 내부 통제강화 등 내치(內治)에 주력해 온 김정일이 러시아를 전격 방문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을 극대화 할 필요에 따른 행보로 읽혀진다. 


2012년 강성대국 진입과 유일무이한 3대(代) 세습왕조 건설을 공언한 김정일로서는 경제협력 등의 외교성과를 통해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내부 여론을 잠재울 필요가 절실했다는 분석이다.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은 “2012년 강성대국 원년,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풀이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통해 내부 불만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한 행보라고 분석했다.


현재 김정일 체제는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 없는 근원적 한계와 경제난으로 인한 간부들의 기강 해이 등으로 관리시스템에 심각한 손상을 입고 있다. 체제 불신과 불만을 제어할 동력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우방국의 원조 등 외부동력을 내치에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당대표자회를 전후로 후계 공식화와 간부 교체로 정치쇄신에 나섰지만 거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낙점한 이후 화폐개혁, 무력도발이라는 극단적 카드를 동원해 체제안정을 도모했지만 오히려 대내외적으로 리더십에 상처만 입었다.


동시에 각종 검열·단속을 강화해 주민들을 옥죄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체제에 대한 불만만 가중시켰다. 정치적 불안요소를 타개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가용하고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같은 통제, 강압 정책은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것이 데일리NK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실제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정은 등장 이후 더 살기 어려워졌다” “아들(정은)이 아버지보다 더 하다” 등의 불만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정권의 경제적 실정(失政)을 불만의 1순위로 꼽고 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강성대국 진입’과 ‘3대 세습 당위성’ 등 정치구호만 내세우고 있는 지도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최근 북한 내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다. 만성적인 식량난에다 수해 영향으로 쌀 등의 식량가격도 급등했다.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한 당일 평양 장마당에서 쌀값이 2600원까지 치솟았다. 곡창지대에 대한 홍수 피해로 내년 식량난 악화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대내외적인 환경 악화가 김정일을 우방외교에 내몰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경제 악화에 따른 주민들의 불만을 대외 지원으로 어느 정도 회복해 보겠다는 의중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의 통화에서 “수해나 화폐개혁의 여파 때문에 민심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방러를 통해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은을 포함한 지도부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완화시키고, 후계구축을 순탄히 하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정일은 이번 러시아 방문 결과로 얻게 될 경제적 효과를 최대한 포장해 대(對)주민 프로파간다(선전선동)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과 러시아의 밀가루 5만 톤 지원 소식을 대내외 매체를 통해 곧바로 공개한 것도 이 같은 계산에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앞서 북한은 김정일의 지난 5월 방중 직후에도 황금평 등 경협관련 소식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바 있다.  


정 연구위원은 “강성대국 입문을 앞두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주려는 행보”라며 “러시아의 밀가루 지원을 곧바로 선전한 것도 우방국의 지원으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도 김정일의 방러 성과에 편승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자신에 대한 불만을 완화시키는 계기로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덧붙여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자칫 후계행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했다.


김 편집위원은 “후계문제를 정착하는데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중국의 영향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면서 “후계자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자칫 중국이 후계지지를 철회할 경우에 따른 나름의 안전망을 만들기 위한 행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도 최근 수년간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심해진 반면 러시아와의 관계는 냉랭해졌다는 점을 상기하며 “김정일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깊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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