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장관, 대북접근시 北도발 常數 고려하나

I.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경기의 열기가 절정에 도달하려는 시점에 일어난 제2차 연평해전으로 6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하였으며 고속정 357호는 만신창이가 되어 침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평양을 방문해 6·15선언을 한 지 2년, 햇볕정책을 시작한 지 3년이 넘는 시점이었다.


“북한의 의도에 대해선 해석을 못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는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서동만 상지대 교수)


“어떤 목적이 있었을 텐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행위로 북한이 얻어낼 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이종석 세종연구원)


“남측의 월드컵 성공으로 인한 체제 위축도 동기로 생각해 볼 수는 있다. 북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보면 우발성도 배제할 수 없다.”(서주석 국방연구소 연구원)


햇볕정책 신봉자들인 이들이 논리적으로 북한의 의도를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제2연평해전은 온건한 대북정책, 북한과의 화해정책, 막대한 대북지원을 시작하였던 김대중 정권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것은 한국 국민으로 하여금 햇볕정책을 불신하도록 만들며, 이점은 북한정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도발논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3명은,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노무현 정권 하에서 각각 안기부 기조실장, 통일부 장관, 청와대 안보수석 등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대북정책을 좌지우지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 논리는 이제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이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한 직후 연합통신이 정리한 북한의 도발일지를 한 번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1970년대 중반 이후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는, 아웅산 국립묘소 폭파사건, KAL 858기 폭파사건 등 국가원수 암살이나 충격적인 대규모 민간인 테러공격과, 휴전선에서의 도발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천명되거나 시작된 이후에는 서해5도로 주요 도발이 집중하고 있다. 왜 그럴까?


북한의 서해 도발집중은 NLL 무력화에 있으며 이는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NLL-무력화 장기 프로젝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햇볕정책이 시작된 이후 한국의 국가원수를 시해할 필요는 없어졌다. 암살기도를 해 봐야 정말로 북한에 이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북한은 서해5도의 분쟁지역화를 통한 NLL-무력화는 김대중 정권 이전까지는 불가능하였지만 햇볕정권 하에서는 해볼만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처럼 북한의 NLL 장기 프로젝트는 김대중 정권을 넘어 노무현 정권으로 계속되었고, 2007년 10월 4일 노무현-김정일 회담 후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나타났다.


이 선언에서 김정일 정권의 NLL-무력화는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조성 방안’으로 구체화 되어 일단 문서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게다가 북한의 집요한 서해 도발은 한국의 좌파로 하여금 NLL에 대한 북한의 주장이 한국 정부의 주장보다 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도록 만들었다. 마침내 노무현 전 대통령은 NLL이 ‘남북 간에 합의한 선이 아닌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고 발언하여 이 선이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였다. 이 정도면 북한의 집요한 장기 프로젝트가 성공 일보 직전까지 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II.


이명박 정권은 무조건 대북포용정책을 폐기하고 조건부 포용정책으로 선회하였으나 북한은 그 조건을 결코 수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처럼 3월이면 비료 받고, 6월이면 쌀을 받고, 9월에는 경공업자재를 받음으로써 가을걷이를 끝낸 다음 무슨 이유에서이든 한국정부를 비난하면서, 남북관계의 농한기에 접어들었다가, 이듬해 봄이 시작할 때쯤에는 남북 장관회의를 여는 대가로 다시 비료를 받는 등의 김정일식 ‘농가월령가’를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피상적으로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에 들어갔다.


다른 한편 북한의 NLL-무력화 장기프로젝트는 김정은의 3대세습을 위한 담력 시험장이 되었다. 작년 3월에는 천안함에 어뢰를 발사하여 46명의 장병이 전사하였고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하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하는 기간이었던 지난달 20일에서 25일까지 세자 김정은이 남포 앞의 무인도를 점령하는 육해공 합동훈련을 주재하였다고 한다. 이에 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북한이 서북 5도를 점령하려 한다는 첩보가 있다”며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첩보의 유무와 관계없이 북한 정권은 핵개발과 함께 서해5도 분쟁지역화를 통하여 NLL-무력화를 계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핵개발과 NLL 무력화는 이제 한국정권의 이념지향성과 무관하게 추진되는 북한정권의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이 이제 너무나 분명해졌다. 문제는 ‘북한이 언제 도발을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III.


북한이 언제 도발할지 예측한다는 것은 그 징후를 탐지하고 판단하는 정보전문가들의 몫이지만, 북한이 좋아하는 도발의 적기를 예상하는 것은 다행히 일반인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정일은 한국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 대통령과 김정일과의 회담 등을 간청하거나 북한의 적대행위에 대한 이해를 표명하는 등등, 한마디로 자신에게 호의를 보일 때에 도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다음의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기 전까지 대북애원에 가까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을 보라.


“북한 측에 많은 양보를 하겠다.”(2006년 5월 10일)


“상황의 실체를 넘어서 과도하게 대응해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일각의 움직임들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2006년 7월 20일.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국내 강경파와 대북 압박을 점차 강화하려는 미국·일본 정부를 겨냥한 발언)


“한국의 국방력 강화는 북한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적 태세를 갖추는 것”(2006년 8월 13일)


“가슴속에 남아 있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도 이제는 넘어서야 한다. 지난날을 용서하고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2006년 8월 15일 제61주년 광복절 기념사)


“핵실험을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언제 할 것인지에 관해 아무런 징후나 단서를 갖고 있지 않아, 근거 없이 여러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여러 사람이 불안해하고 남북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해롭게 한다.”(2006년 9월 8일)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핵실험을 감행하였다. 그러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마당에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겠는가”라며 햇볕정책의 포기를 잠시 암시하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 주민들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갖지 않도록 포용정책은 지속돼야 한다”며 북한을 옹호하였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11월 2일 “북한의 핵실험을 과장하지 말아야하며, 핵실험으로 인해 남북간 군사균형이 깨진 것은 아니다”라며 상황축소에 급급하였다.


IV.


이제 한국좌파의 김정일 정권 옹호는 북한이 언제, 어떤 상황 하에서도 기대하고 예상해도 되는 대남도발 공식(公式)의 상수(常數)가 되었다. 좌파정권 하에서의 모든 도발은 북한에 충분히 지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미국의 대북위협 하에서의 자구책으로 해석하면 된다. 우파 정권 하에서의 모든 도발은 “전쟁하자!”는 극우적 대북강경책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석하면 된다. 북한이 발뺌을 할 경우에는 한국정부의 조작, 모략극으로 몰고 가면 된다. 우리는 작년 연평도 포격과 천안함 폭침에서 이점을 명백히 볼 수가 있었다.


심지어 북한의 강경 도발은 국민으로 하여금 대북정책을 연성화하라는 압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작년 천안함 폭침 후 이명박 대통령의 5월 24일 대북성명은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를 가져왔다. 우파 정권의 대북강경책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북한은 언제, 어떤 도발을 하여도 잃어버릴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이러한 도발행태를 제대로 파악하고는 있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이 북한을 통과하는 프로젝트가 성사될 것 같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신임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명박-김정일회담 추진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권 말 회담조급증이 이명박 정부에서도 도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문제는 임기 말의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호의적 메시지, 획기적 관계 개선을 공표할 때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책이 있느냐는 것이다.


앞에서도 강조했지만 북한의 핵실험과 NLL-무력화 도발은 가능성의 영역이 아니라 필연의 영역에 있다. 이 점을 의심하는 정부는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다. 특히 선거가 줄줄이 있는 올해 말부터 내년은 북한이 도발을 통해 우파정권을 무력화하고 바보로 만들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 북한에 잔뜩 호의적 접근을 했는데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강한 도발을 할 경우 한국정부는 스스로 덫에 사로잡히는 꼴이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4·27 재보선에서 민노당이 제시한 야4당의 정책합의문이라는 것에 서명을 하였다. 그중에는 무상복지 시리즈와 함께, 보수언론의 종편취소, 외국군 철수, 국보법 철폐 및 대체복무제 등을 명시하였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 한나라당 출신 정치인이 민노당에게 무조건 굴복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직을 놓고 작성되는 좌파 정책합의문은 얼마나 화려할까?


이점을 북한정권이 놓칠 리는 없다. 민노당이 캐스팅 보드를 쥐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일이 이명박 정부의 극적인 대북관계 개선을 그냥 인용(認容)하리라고 보는 것은 무책임한 판단이다. 북한은 처음에는 전향적으로 나와 한국정부를 깊이 끌어 드리겠지만 적기가 오면 한국정부의 뒤통수를 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