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우익 실장의 ‘남북-남남 양비론’은 잘못되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후에 많은 시정(市井) 여론은 “최소한 친북 좌파 정권이 종식됐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대선은 너무나 잘된 것 아닌가?“ “하늘이 무심치 않았기에…” “만약 이번에도 좌파로 넘어갔더라면 그땐 정말 대한민국 볼 장 다 볼 판 아니었나?” 하는 아슬아슬한 위기감과 “후유~”하는 안도감을 한 목소리에 섞어서 분출시켰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이 간혹 실수를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적어도 ‘지난 10년’간의 홍위병 개판보다는 월등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주려니 하는 기대를 아직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해서든 ‘좌파 10년’의 실패를 뛰어넘는 현저한 ‘성공 정부’가 되도록 도아주고 싶고, 밀어주고 싶다는 선의(善意)에도 아직은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여론의 이런 선의와 신뢰를 최근 며칠 사이에 갑자기 격렬한 혼란과 혼동속에 빠뜨린 일련의 의아한 사태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이명박 정권은 과연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하려 할 것인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은 그저 해묵은 부동산 과다소유와 그에 대한 어쭙잖은 ‘변명’ 아닌 ‘3류 코미디’ 수준의 발언들이었다. 문제는 이런 3류 코미디 수준의 발언들밖에 할 수준이 못되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선진화’ 운운 하는 정권의 국무위원으로 발탁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 사연의 뿌리는 단 한가닥으로 귀착한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팀의 ‘잘못 이해된 실용주의’와 ‘잘못 사용되는 실용주의’- 그것이다.

실용주의란 피어스(Peirce), 제임스(James), 듀이(Dewy) 이래의 미국적 성과주의의 철학 전통이다. 거기에는 “돈이면 다다”라든가 “가치는 따질 것 없이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천박한 몰가치적 취득(取得) 동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칸트 이래의 진지한 진리(truth) 추구의 방법론적 고민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세속적인 정치구호로 끄집어 내린 사람이 다름 아닌 중국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貓白貓論)이었다. 이것은 우리 실학파(實學派) 선각자들의 실사구시(實事求是) 철학에 결코 비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의 정치선동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다다“라는 그의 실용주의는 결국 ‘불변의 원칙’을 떼어버린 한낱 편의주의적 보급투쟁의 명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는 결국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의 대원칙에서 떠난 것까지는 좋았지만, 시장경제는 전투적 자유의 이념 하에서만 정합성(整合性)을 갖는다는 정통 자유주의의 철학적 대원칙에도 사기를 친 셈이다.

그의 중국은 그 덕택으로 물론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적 정신적 기초를 따돌린 등소평의 도구적 실용주의는 오늘의 중국을 오자와 일본 민주당 지도자가 직격탄을 날린 그대로 극심한 부패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다. 바로 실용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종착역인 셈이다.

한국 이명박 정부의 류우익 대통령 실장은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간, 그리고 남-남간에 이데올로기적 시비는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한층 더 ‘맹물’로 탈색시킨 사회과학적, 철학적 무지의 결정판이었다. 류우익 실장이 그 말을 김정일에게 한 것이라면 그런대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한반도에서 백백교 같은 엉터리 이념을 설파하는 자는 김정일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남-북간과 남-남간 이념투쟁도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우파에 대해서도 “너무 이념싸움에 몰입하지 말라‘는 양비론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정히 그렇다면 그는 민노당 PD 계열의 종북주의 비판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우리가 김정일의 인권 말살에도 침묵해야 한다는 것인지, 비전향 장기수는 무조건 북송해도 국군포로와 납북자에 대해서는 찍소리 한마디도 해선 안 된다는 것인지, 그리고 남한 주사파의 일심회 간첩행위에 대해서도 단 한마디 비판도 해선 안 된다는 것인지. 류우익 실장은 분명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인사문제 등 일련의 불협화음은 결국 이명박 팀의 ‘순정(純正) 실용주의’ 아닌 ‘몰가치적 실용주의’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소산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류우익 실장은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전제하고서 반(反)좌파 혈투를 벌였던 지난 5년간의 정통 우파와 뉴라이트의 위상은 도대체 뭐가 된다는 것인가? 그들은 또다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들판 자유주의의 전사로서 저 험악한 야당투쟁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인가?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