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 세계 흐름 읽고 재선 성공…남미 강국 예약

▲ 재선에 성공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

29일 실시된 브라질 대선 2차 결선 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61세) 대통령이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 룰라는 과반수 확보에 실패해 결국 1, 2위가 승부를 다투는 결선으로 가게 됐다. 1차 투표에서 41.6%로 룰라를 위협했던 제랄도 알키민(53) 후보는 2차 결선에서 39.2%를 획득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높은 국민적 지지를 안고 있었던 룰라는 애당초 1차 투표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심산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지지율이 떨어지는 바람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룰라를 고전케 했던 것은 선거전 막판에 터진 ‘야당 인사 음해 문건’ 스캔들 때문이다. 여당의 선거 책임자가 야당 인사를 모함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주고 야당 후보 음해 내용이 담긴 문건을 매수하려고 한 사건이다. 그런데 문건의 내용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자 문제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이 파장이 2차 결선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국민들의 관심은 실업과 생계 문제, 빈부 격차 해소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있었다. 룰라는 임기 중 경제 성적표가 그리 나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재집권이 이뤄질 때만이 경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브라질은 차세대 신흥경제강국으로 주목받는 브릭스(BRICs) 중에서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가장 둔한 실정이다. 브라질은 1998년 IMF 구제금융에 의존하는 처지가 되기도 하였으나 2000년대 들어 다시금 성장세로 돌아선 이후 낮지만 꾸준한 성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러한 기조를 좀 더 끌어올리는 것이 현재 브라질의 당면한 숙제라 할 수 있다. 넓은 영토에 풍부한 부존자원, 거대한 인구는 브라질 경제 성장의 높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 잇는 거대 자유무역지대 구상

룰라는 관료사회의 부정부패와 관료주의를 가장 주된 개혁 대상으로 꼽으며 1기 정부때부터 행정개혁, 사법개혁를 추진했다. 그는 지지 세력의 반발까지 감수한 노동시장 개혁 등 각종 개혁 과제를 밀어 부치고 있다.

2기 룰라 정부의 가장 괄목할 관심 대상은 대외 정책이다. 브라질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확대 개편에 일순위로 꼽히는 나라다. 브라질이 중남미를 대표해 상임이사국에 드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룰라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위치를 굳히는 방향으로 대외적 행보를 취해 갈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보조가 주요한 문제가 된다. 미국은 중남미 강경 좌파를 경계하고 완충할 수 있는 역할로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룰라를 환영하고 있다. 룰라 또한 1기에서부터 미국과 굳이 척을 지지 않는 태도를 취해 왔다.

현재 중남미는 브라질 주도의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Southern Common Market, 일명 Mercosur)’와 최근 강경좌파연대로 부상한 ‘인민무역협정 체제(PTA: People’s Trade Agreement)’ 그리고 ‘미주자유무역지대 구상’이 지역공동체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메르코수르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 베네수엘라를 받아들였다. 인민무역협정은 쿠바와 볼리비아, 베네수엘라가 강경좌파연대의 일환으로 협력하고 있다. 미주자유무역지대 구상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이 주도하는 북미자유무역지대의 확대 구상으로서 중남미를 포괄하려는 전략이다.

브라질은 메르코수르의 역량 강화는 물론 다른 움직임들과도 다양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브라질은 궁극적으로 역내 강한 영향력을 동력으로 ‘중남미 지역의 EU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특히 브라질의 야심은 북위 30도 이남의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남남협력’까지 뻗어 있다. 지난 9월 13일에는 제1회 인도-브라질-남아공(IBSA) 정상대화포럼’이 브라질리아에서 개최됨으로써 남남협력의 도화선에 불을 당겼다.

이는 중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3개 지역을 대표하는 신흥경제대국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으로서 이 나라들의 역내 입지를 고려하면 거의 지구의 절반을 가르는 새로운 거대 시장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브라질의 메르코수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아프리카관세동맹(SACU) 그리고 인도를 묶는 새로운 거대 자유무역지대 구상을 공유했다.

세계의 관심은 이제 중국의 참여 여부에 쏠렸다. 만일 여기에 중국까지 동참한다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룰라의 개인 이력은 특히 그의 성공에 빛을 더한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에서 금속노동자로 그리고 노동 운동에 뛰어든 후에는 ‘브라질 노동자당’을 결성, 국회의원에도 출마해 당선됐다.

세 번이나 대선에 낙선한 후 지난 2002년 마침내 집권에 성공하며 브라질 최초 좌파 정권의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1989년 최초 대선에 나선 그는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 말자(Without Fear of Being Happy)’는 슬로건으로, 당시 브라질의 악명 높은 빈곤에 허덕이던 민중들에게 더없이 강한 인상과 인식을 던졌다.

룰라의 이런 이력은 좌파적 이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고 있다. 그러나 룰라와 그의 정당이 브라질 정치사와 함께 수많은 변신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룰라의 성공이 주는 진정한 교훈은 세계의 흐름을 알고 변화를 읽을 줄 아는 정치 세력만이 시대와 국민의 부름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룰라는 좌파의 성공 모델이면서 동시에 좌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하는 최소한이자 필수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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