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할머니 “北 남편 보고싶어요”

▲ 연애할 당시의 두 사람 <사진제공 alto & base company>

“제 남편 조정호를 아시는 분은 지금도 기다리는 우리 처지와 근심을 남편에게 알려주세요. 남편의 주소라도 알고 싶습니다. 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에, 남편이 아니면 남편의 친지라도 만날 수는 없을까요?”

40여년 전 헤어진 북한의 남편을 그리워하는 루마니아 할머니의 애절한 편지가 탈북자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에 배달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루마니아에 살고 있는 죠르제따 미르초유(Georgeta Mircioiu) 할머니.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는 간곡한 편지와 사진을 북한 당국 뿐 아니라 국제적십자사나 엠네스티인터내셔널 등에 수도 없이 보냈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남편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올해 72살의 미르초유 할머니가 북한인 남편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 조정호씨는 1952년 당시 북한의 전쟁고아 3천명을 이끌고 루마니아로 파견된 북한의 교원이었다.

당시 사범대학을 갓 졸업한 할머니는 조정호씨가 있던 인민학교에 미술 교사로 재직하게 됐다. 두 사람은 5년간의 열애 끝에 양국의 허가를 받아 결혼까지 올리게 됐고, 평양으로 이주해 사랑의 보금자리를 꾸리게 된다.

▲ 미르초유 할머니 가족의 단란한 한 때를 담은 사진과 남편을 그리는 할머니의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편지<사진제공 alto & base company>

할머니는 지금도 평양시 중구역 외교부 아파트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친절했던 이웃들, 입에도 대지 못하던 매운 김치 등 두 사람의 신혼은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1962년 두 살배기 딸 미란이 중병에 걸려 치료차 루마니아로 다시 건너온 뒤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할머니는 아이가 건강해지고 나면 북한에 돌아가려고 했지만 루마니아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그 후 남편의 남동생을 통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1966년부터 끊기고 말았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받은 편지에는 남편이 평양에서 지방학교 교원으로 발령났으며, 다시 탄광으로 보내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北 정권이 강제로 헤어지게 한 국제결혼 커플들

김일성은 1960년대 수정주의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외국인과 결혼한 주민들을 강제 이혼시켰다. 외국인에 한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추방하거나 재입국을 불허했으며, 북한에 남은 배우자들은 혁명화 대상으로 탄광이나 광산으로 끌려갔다.

남편은 당시 편지에서 “당과 조국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탄광에서 일한다”고 쓰고 있었지만 미르초유 할머니는 자신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고역을 치르게 됐을 거라고 미안해했다.

▲ 딸 미란이 아버지를 그리며 쓴 편지 <사진제공 alto & base company>

할머니는 남편의 소식을 듣기 위해 거의 매달 북한 대사관을 찾아갔다. 남편이 살아있다면 만나게 해달라, 남편이 죽었다면 유골이라도 확인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북한 대사관측에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 대사관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사망, 소재파악 불가, 생존, 사망 등으로 매번 달랐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헤어져 아이를 혼자 키우며 평생을 기다림으로 살아온 미르초유 할머니는 남편과의 결혼을 단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은 할머니는 오늘도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편지를 쓰고 있다.

양정아 기자 jung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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